영혼의 절규
인류의 아주 오래전부터 전쟁이 있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전쟁은 인간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모든 인류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하물며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내일 우리가 승리하더라도 나는 살아 있을지 죽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우리 진영이 패배를 맛보게 된다면 나의 죽음과 더불어 가족들까지 죽을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이니 출정 전 그들의 하루는 얼마나 불안에 떨었을까.
그래서 전쟁 하루 전 그들은 출정식을 가지게 되었다. 장군들의 일장 연설과 함께 술과 음식을 먹으며 사기를 북돋는데 집중했다. 출정식은 일종의 의식으로 불안함을 없애기 위한 모종의 주술적 행위이다. 소위 ‘으쌰으쌰’ 외치는 소리는 알 수 없는 내일의 승리를 위한 울부짖음이고 근거를 찾겠다는 소리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피가 튀는 전쟁터에서 나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쓰이는 말이 바로 ‘Boosting’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삶이 이미 전쟁터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고대에서 치렀던 전쟁과 다른 점이 피가 튀지 않을 뿐, 수많은 사람을 죽여야 하고 밟아야 하는 것은 똑같다. 현대의 하이 테크놀로지는 삶의 질은 향상했지만, 알 수 없는 내일까지 지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출정 하루 전 군인들의 모습처럼 오늘 우리도 불안에 떨어한다. 일어나기 힘든 몸을 간신히 일으켜 출근 준비를 한다. ‘가기 싫다’를 반복적으로 외치면서도 몸은 옷을 입고 있다. 좀비처럼 걸으면서도 입 안으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꾸역꾸역 밀어 넣는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하루를 제대로 보낼 수 없으리라. 이와 같은 출정식이 필요할 만큼, 불안하다.
이러한 ‘Boosting’을 달리 표현하면 ‘영혼의 발악’ 혹은 ‘영혼의 절규’라고 말한다. 누구의 표현인지 모르겠으나, 우연히 들은 이 말이 참으로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우울함으로 아주 고통스럽게 표현해 내고 있을 것이다. 또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낙관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은 휴일만을 기다리며 웅크리고 버티고 있을 수 있다.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자랑질로 발악을 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절규를 쏟아내고 있으며, 스스로를 그렇게 ‘Boosting’ 중이다.
나의 몇 가지 안 되는 글에서 발견했겠지만, 나는 알 수 없는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독서나 여행, 사진으로 해결한다. 그때마다 사진과 함께 남기는 짧은 글들을 볼 때마다 가슴 저기 저 밑바닥부터 콕콕 쑤셔온다. 다 지나간 과거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불안이다. 지독할 정도로 몸부림쳤던 나의 모습을 시간의 건너편에서 지금 보노라니, 현실의 슬픔은 배가 된다. 먼 훗날 지금의 모습을 볼 ‘나’도 그렇게 느낄 테지.
변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삶은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내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고 이겨야 한다. 여유를 갖는 것은 좋은 방법이지만 글쎄, 그럴 여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주변의 사람들의 어떤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 나름의 삶이 힘들어 여러 방식으로 몸부림치고 있음을 이해해 주고 넘어가주길 바란다. 어차피 ‘Boosting’은 같이 하면 할수록 강해진다. 혹시 아는가. 그 기운이 내게도 뻗쳐 내일을 승리로 마무리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