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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거스냅 Jul 02. 2019

홍콩 필름; 길 위의 군상

People on the street

모든 사진은 2018년 9월 홍콩 여행 중에,

Contax G2, Contax T3, Contax T2와 다양한 필름으로 촬영하였습니다.

색감 및 조도가 일정치 않은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른 아침, 바삐 걸음을 움직이는 홍콩인들


9월, 우기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드센 홍콩의 무더위를 피해 아침부터 채비를 하여 길을 나선다. 숙소가 있던 완차이 구석으로부터 인근 지하철역에 다다를 수록, 점차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세계 어느 곳이든, 도시는 바쁘다. 적어도 피상적으로는 바빠 보인다. 홍콩 역시 마찬가지다. 인구밀집도 순위가 세계적으로 높은 걸 증명이라도 하듯 길거리에 사람이 많다. 차를 구입하고 주차하는 비용이 막대하다보니 자연스레 도보인구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서울과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좁은 도시에 있다는 기분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흰색 횡단보도 바닥표시선과는 달리 노란색이다.


홍콩을 다녀온 사람이라던 귓가에 맴도는 그 소리. 횡단보도 앞 신호등. 약속된 대로 멈춰있다가 뚜뚜뚜뚜- 신호등 소리에 맞춰 일제히 움직이는 모습이 통일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걷는 방향과 모습은 각기 다르다. 동서남북도 모자라 대각선 방향으로 뛰어가는 사람, 수레를 끄는 사람, 더위에 지쳐 터벅이는 사람, 총총 걷는 사람, 담배피며 걷는 사람, 바닥만 보며 걷는 사람, 주변 사람을 흘기며 걷는 사람, 그리고 호기심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보는 사람 like me.



횡단보도를 활보하는 다양한 걸음들




홍콩의 길은 그 어느 도시 못지않게 다채롭다. 동・서양의 문화가 이루는 독특한 분위기로부터, 여기저기 들려오는 주변의 언어, 화려한 건물의 색채,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보이는 가로로 난 건물 외벽의 간판들까지. 조금만 중심부를 넘어가도 창문 밖으로 빨래를 걸어놓은 홍콩 사람들의 생활상도 홍콩의 거리를 더욱 이색적으로 채우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 그밖에 사람과 교통수단을 포함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거리에 활기를 더한다.



일을 하는 사람들. 어떤 이들에겐 길 위가 삶의 터전.


길은 도시와 도시를 잇고, 마을과 마을을 잇고, 건물과 건물을 잇고, 집과 집을 잇는다. 직장과 가게, 터미널, 공원 등 어느 곳이든 교차로도 잇는다. 사람들은 서로가 속한 환경을 넘나들며 관계를 맺는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길은 그 관계를 이어주는 기반이자 수단이다. 우리는 길 위에서 매일같이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마주한다.


홍콩 경찰들인가?



시대가 발전하며 집이나 식당, 회사 등 목적에 따른 공간의 개념이 생겨남에 따라 종래에 길 위에서 통상적으로 행하는 활동이 대폭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우리는 길 위에서 먹고, 소통하고, 일 하며 때로는 자기도 한다. 인간에게 길은 여전히 곧 삶이다.




홍콩에 거주하는 사람에겐 굉장히 익숙하고 당연한 거리의 모습이, 여행하는 사람에겐 언제나 새롭다.


나는 해외에서 USIM을 사용하지 않는다. 20개국 넘게 다니며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 필요한 것들은 숙소나 카페에서 WIFI로 해결하고, 핸드폰 액정보단 주변의 모습에 집중하는 편이다.



본래 지역을 얼추 외우거나 길을 찾는 것에 자신이 있는 편이기도 하지만(길치의 기분을 백분 이해하긴 어렵지만, 길치가 아니라는 사실에 매우 감사하다), 여행하는 동안엔 특정 목적지가 있지 않은 한 지도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해진 곳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적 여유만 있다면 지도 없이도 충분히 갈 수 있다.


조금 헤매고, 조금 더 다리가 아프고, 조금 더 지칠 수 있다.


하지만 걷다가 우연히 마주쳤던 순간들을 떠올리노라면, 허투루 썼다고 생각했던 모든 시간들이 짧은 여행 속 작은 의미가 되어 남는다. 다른 이들의 시야너머로 보았던 익숙한 모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 내가 마치 이 곳의 진면목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만 같은 설렘, 나만 간직하고 싶은 꽁꽁 숨겨진 장소라는 생각(착각이다)이 들 때면 비로소 여행을 잘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알고는 있었지만, 9월의 홍콩이 더운 날씨만 아니었더라면 조금 더 열심히 걸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있다.





아무리 열심히 앞만 보고 걷더라도, 도시에선 마음처럼 마냥 직진만 할 순 없다.

도시를 걸을 때의 묘미는 필연적으로 쉬어야하는 때가 생긴다는 것이다. 시선을 잡아끄는 대단한 무언가에 멈추는 발걸음이라면 좋겠지만, 사실은 법률의 테두리가 작용하는 범위 내에 있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



홍콩 역시 도시인지라, 어디에나 신호등이 많다. 굳이 없어도 될 법한 짤막한 길에도 설치되어있어 때론 불편하기까지 하다. 소리는 또 어찌나 요란한지. 빨간불일 때도 계속 소리가 울린다. 보행 신호로 바뀌면 더 빠른 템포로 귓가를 자극하며, 괜스레 긴장감을 높인다. 여유있게 길 건너기엔 충분한 시간이라 낚이지 않는 것은 함정.


나란히 횡단보도를 활보하는 행인들

타의에 의해서지만, 사실은 이렇게 잠시나마 멈춰 있을 때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걷고 있었는지를 관찰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신호가 3-4번 바뀔 동안 한 곳에 서서 카메라를 바꿔가며 택시도, 버스도, 그리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도 찍었으니.



물론 신호등 앞에서 멈춰야하는 상황을 중요하게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잘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환경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들기도 하고. 같은 미국이지만 LA와 뉴욕에서 횡단보도와 보행자를 대하는 거리 문화가 생판 다른 것과 같이.


홍콩 역시 뉴욕처럼 도시의 생활 환경이 무단횡단을 방조하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나마 6차선 이상의 큰 도로에서는 목숨을 담보로 하고 싶진 않은 모양인지 무단횡단이 많진 않은데, 작은 도로는 횡단보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무색하리만큼 빈번하고 자연스럽다. 경찰도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문화.



나도 성격이 급해서 걸음걸이가 남들에 비해 빠르고,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는 걸 좋아하지만 필요할 땐 기다리는 것도 미덕이다. 어차피 도시는 언제나 빠르니까.



이렇게 많은 홍콩 센트럴 인파 속에서,

제법 경사진 언덕에 수레를 홀로 끄는 체구가 작은 노인을 돕는 선행은 용기이자 더욱 큰 공덕.


여행자로서 이색적인 도시를 탐방한다는 게 퍽 매력적이긴 하지만, 차마 주변을 둘러보지 못한 채 무심코 흘러가는 도시의 삶, 도시의 시간을 가끔은 경계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다음에 홍콩을 다시금 가게 된다면,

아주 작은 마을의 골목길만을 다니며 곳곳의 정취를 느껴보고 싶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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