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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웃라이어 교사 Feb 27. 2024

전쟁 같은 맛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엄마에 대한 딸의 헌사(Tribute)

 1910~1945 일제강점기, 1945~1950년의 정치 방향을 둘러싼 좌·우 갈등, 1950~1953년 한국전쟁, 전후 혼란기와 그 뒤를 이은 독재 정치와 군부 독재, 민주화 운동과 세기말 IMF 등 한국의 근현대사에 격동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근현대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1987년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태어나 살아온 나에게 역사 시간에 배운 한국 근현대사는 아무리 큰 바위가 시대의 흐름을 가로막을지라도 하나둘 모인 물방울 같은 개개인이 결국에는 거대한 힘이 되어 마침내 바위(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 정치, 군부독재, 경제위기)를 무너뜨린다는(무너뜨릴 수 있다는) 일반화된 지식이다.


 작은 물방울이 하나둘 결합하여 만들어진 힘찬 물결. 나는 그 힘찬 물결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힘찬 물결의 가능성을 역사 시간에 주로 배웠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힘찬 물결을 이루는 각각의 이야기에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다. 그 속에는 물결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앞으로 나간 사람들도 있겠지만 물결의 흐름과 반대되는, 여기서 반대된다는 것은 물결의 흐름 자체에 반대한다는 것보다는 그 과정에서 여러 역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도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분명히 아픔을 느낀다.


 더 나아가 어느 누군가는 시대의 흐름 자체에 의해 아픔을 느낀다.


 시대의 흐름에 자체에 의해 아픔을 느끼는 사람. 그 사람 중 한 명이 '전쟁 같은 맛'에서 작가가 설명하는 엄마일 것이다. 엄마는 일제 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광복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전쟁이 일어난다. 엄마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여럿 잃는다. 전후 어려워진 한국의 사회 속에서 엄마는 사회적 약자로 생존을 위해 당시 권력과 돈이 모여있는 미군 기지 주변에서 접대원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엄마는 미국인 선원의 아이(작가)를 임신하게 되고 남편의 고향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한다.


 선진국 사람들이 후진국 사람들에게 가지는 편견 중 하나는 후진국 사람들이 선진국에 왔을 때 정치적, 물질적인 환경의 안정이 곧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 온 이후 엄마는 역설적으로 결핍과 외로움이 점차 심해지고 나중에는 곪아 터져 버려 결국 조현병에 걸린다. 결국 엄마는 작가가 자신에 대해 쓴 책의 원고를 보여주기 직전 방 안에서 혼자 쓸쓸히 사망한다.


엄마가 정신을 놓은 지 32년이 지난 뒤, 그 매듭의 실을 훌훌 풀어 그 가닥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볼 수 있게 된 나는, 엄마를 미치게 한 것이 매듭 그 자체임을 알게 될 것이었다.


 책 속에서 작가는 돌아가신 엄마의 삶을 하나 둘 재구성하여 독자에게 보여준다. 재구성한다는 것은 작가의 경험과 전문적 지식을 결합하여 엄마의 삶을 당시 이중적인 한국인, 멸시를 담은 미국인의 편파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엄마의 삶에 해석과 의미를 하나둘 부여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엄마는 사회로부터 평가되었던 개인적인 정신 일탈이라는 조현병에서 벗어나 당대 격동의 시대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한 개인의 아픔을, 그리고 당대 사회적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소외되었던 약자들의 비극을 대표하는 표상이 된다.


 이 글의 소제목처럼 이 책은 작가가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엄마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진다. 작가는 엄마의 삶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가졌던 아픔들을 하나둘 이해하는 과정에서 엄마를 위로하며 당대의 모든 약자들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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