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후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웃라이어 교사 Mar 06. 2024

죽음의 수용소에서

자대에서 처음으로 읽은 책

 <오! 한강>을 읽은 후 밀리의 서재에서 다음에 읽을 책을 찾아보던 도중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눈에 띄었다. 책을 본 순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책을 읽을 때 느끼게 되는 이전보다 폭넓은 독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단순히 착각이라도)과 이전에 읽었을 때는 경험하지 못했던 이질적인(?) 감정은 책을 다시 읽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재인해보고 싶은 이유는 나에게 이 책이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자대에 배치받아 처음으로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자대에 처음 배치받을 때의 막막한 기분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늦은 나이에 입대했던 군대에는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어린 선임이었고 그들의 꼽질을(?) 하루하루 버티며 지냈던 나의 이등병 생활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 부대가 당시로는 선진적인 제도였던 동기 생활관을 운영하는 부대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관 내 호실에서 만큼은 다소 자유롭게, 물론 정확히 말하자면 근기수 생활관이기 때문에 선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지낼 있었다. 생활관 건물 내에는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은 방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부대의 규모 치고는 꽤 매우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느날 여유가 생긴 나는 짬짬히 읽을 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들어가 책을 고르던 중 군대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느껴지는 다소 특이한 제목의 책을 발견했는데, 책이 <죽음의 수용소에서> 였다.


 지금에야 군대를 떠올리면 좋은 사람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24시간 같이 있을 있었던 추억의 장소이지만 당시에는 군대라는 시스템 자체가 주는 중압감이 강해 내 심리 상태는 수용소에 갇힌 것처럼 매우 억압된 상태였다. 아마 도서관에 서가에 꽂힌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을 보고 나는 수용소와 군대를 동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을 꺼내고 책 뒷 면의 글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렇게(밀리의 서재에 있는 판본과는 다른 것 같다.) 쓰여 있지 않았을까?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난 정신과 의사가 전달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하여...'

 그 순간 나는 이 책에서 앞으로의 군생활 속 가져야할 자세와 태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 책을 가지고 생활관으로 돌아와서 조금씩 시간이 날 때마다 읽기 시작했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담임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끔씩 훈화(혹은 쓴소리)를 해야 할 때 <죽음의 수용소에서> 책을 언급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언급하는 주된 내용은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정신과 의사가 악명높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정신(력)이 얼마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냈다는 것, 예로 드는 내용이 있는데 저자는 죽음의 공포에 휩쌓인 사람들에게서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곤 한다고 말하는데 기력이 나빠지면 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아는 수용자들은 한겨울에도 절대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되고, 영양 부족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노동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점. 그 과정에서 살아가는 데 의미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저자가 깨닫고 전쟁 후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베푸는 삶을 살았다는 점. 마지막으로 우리도 삶에 의미와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책을 읽은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아이들에게 기억하고 말해주었다는 것은 군대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 속에 남은 내용은 즉, 내가 삶의 자세와 태도로 삼아야 겠다고 내면화 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이지 않을까? 당시에 책을 다 읽은 나는 안도감 혹은 희망을 느끼고 잠시 편안한 감정 상태였던 것 같다. 아마 내 상황보다 훨씬 더 처참한, 비극적인 극한의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 때문일까? 나는 얼마 되지 않아 군대에 적응한 후에 군생활 내내 사람들과 즐겁게 잘 지내고 무사히 전역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사회 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안정된 생활을 하는 상황에서 책을 다시 읽어보니 그때와는 또 다른 새로운 울림이 다가온다. '어떤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다'라는 결론은 똑같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나에게 닥친 고난을 이겨내기 위해, 힘든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마음의 위안 하나를 찾아내려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은 그때보다는 더 안정된, 능동적인 마음으로 어떻게 하면 지금 영위하고 있는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 만약 어려움에 닥쳤을 때 내가 가져야 할 생각은 무엇인지,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지를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따로 정리하기 위해 인용한 구절을 살펴보니 70개가 넘어간다. 딱 하나를 꼽아 공유한다면 위에 있는 부분을 남기고 싶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 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돼야 할 의미가, 다른 극에는 의미를 실현시킬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저자는 균형의 상태를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끊임없이 변동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고 그러한 역동성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 밖으로 불러오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인생의 역동성과 관련하여 말한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이다.'와는 정반대의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나는 항상 균형(equilibrium)이 평온한 상태이고 안정된, 지향해야 할 상태라고 보았는데, 삶이 그렇게 평형 상태를 계속 유지하지 않는다(건강, 인간관계, 직장생활 등)는 현실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매우 짧은 순간에만 평온을 찾게 되고 이러한 내적 진술은 역설적인 상황을 맞이한다. 그러나 삶이 인생의 흔들리는 움직임 속에서 노력하고 투쟁해 목표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 자체가 의미가 될 수 있다.

 아무리 강한, 변동성 강한 파도라도 그 흐름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서퍼들을 보며 인생은 서핑과 유사하다고 저자는 말해주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전쟁 같은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