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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연 Oct 17. 2023

삶은 구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잠에서 깬 나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나도 삶에 대해 생각하고, 하루에도 수백 명이 드나드는 서점에서 책을 포장하다가도 삶에 대해 생각한다.


취업 준비를 하며 자소서를 쓰던 어느 날, 내가 쓴 문장의 구림을 견딜 수 없었다. 남들과 다른 자소서를 쓰겠다며 거창하게 시작한 글은 이도저도 아니게 끝났고, 열 개의 손가락은 타자 위에서 길을 잃고 나를 바라봤다. -손끝마다 달린 눈. 그 어떤 눈보다도 내 손끝에 달린 눈이 가장 무서웠다.- 구린 문장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스스로에게 감탄하며 시작한 글이 이렇게나 별 것 아닐 수 있다니, 하는 창피함이 몰려왔다. 그러다 다른 이의 자소서를 검색해서 읽었다. 평범함 속에 깃든 그의 노력이 환히 빛나는 것 같았다.


성실한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게으르다. 농사부터 택시 운전을 지나 건설 현장에서 수십 년째 일하고 있는 아빠(이하 수)는 올해 나이 예순일곱이다. 마흔둘에 나를 본 아빠는 남들이 노후 준비를 할 때 나와 언니 뒷바라지를 했고, 그건 엄마(이하 희) 역시 마찬가지다. 희는 결혼 전 식당에서 오래 일했다. 딸은 공부시키는 게 아니라는 외할머니의 굳은 믿음에 학업을 끝까지 마치지 못한 희는 도망치듯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희는 먹고 자고 일하며 돈을 모았고, 돈을 잃었다. 수를 만나 우리를 낳은 희는 나와 언니(이하 정)를 키우느라 주부가 되었다. 


어릴 적부터 일만 한 수는 그 사실이 억울해 때로는 술을 먹고 서러움을 토하기도 했다. 조용한 아버지와 오빠를 보고 자란 희는 그런 수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무서웠고, 그건 나와 정도 마찬가지였다. 세 여자는 수의 거친 모습에 익숙해졌다가도 참을 수 없었다. 수 역시 자신의 술버릇을 알면서도 굳이 고치지 않았고, 우리의 이십 년은 단란하지만 거칠게 흘러갔다.


다양한 갈래로 흩어진 사랑을 받고 자란 나와 정은 일찌감치 무기력을 배웠다. 정과 나는 늦은 밤 '삶이란 뭘까.', '사람은 뭘까.'와 같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질문에 대한 답은 끝내 찾을 수 없었지만, 우리는 이전보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깊어진 생각으로 잠에 들었다. 


아무튼, 수와 희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그들이 가진 성실함이다. 그들은 때로 돈을 잃고, 사람을 잃고, 마음에 큰 상처를 얻었음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제의 노동으로 얻은 약간의 돈으로 삶을 꾸렸고 우리를 길렀다. 큰 용기로 얻은 빚을 모두 갚았고, 삶이 안정된 후에도 노동을 멈추지 않았다. 희와 수는 자신들이 잃은 것보다 이룬 것에, 꾸린 것에 더욱 집중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희, 수와 달리 나는 비교적 덜 성실하다. 좋아하는 것을 티 나게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할 때엔 크게 스트레스받는다. 견딤을 견디는 희, 수와 달리 나는 견딤을 견디지 못한다. 그렇기에 쉬운 것을 선택하고, 그러면서도 높은 이상을 꿈꾼다.


이런 나를 마주할 때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구린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삶은 구린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떡하니 써놓고도 구린 나를 참지 못해 이렇게 글을 쓴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뭐든 잘하는 멋쟁이인데(그래야만 하는데!), 현실의 나는 작은 일 하나에도 전전긍긍하는 간장 종지다. 자주 나를 바라보는 손끝의 눈을 가리려 두꺼운 젤로 손톱을 가려도 그들의 눈은 끝내 가리지 못한다. 두껍게 바른 젤 네일 위로 깜빡이는 눈을 보며 나는 또 나의 구림을 마주한다(그래야만 한다).


나의 시선은 내 손끝에 있고, 지나가는 사람의 이마에 있으며 때로 내가 가는 모든 곳, 보고 있는 모든 것에 달려 있다. 그 눈은 구린 나를 피하려다 마주친 또 다른 나고, 내가 가진 수많은 자아 중 타인을 의식하며 그것을 따르려 애쓰는 어린 나이기도 하다. 


구린 나를, 나의 구림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유부단과 전전긍긍. 이상은 높으나 몸은 게으른 나는, 언제쯤 내가 가진 구림을 사랑으로 껴안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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