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연 Sep 17. 2023

스스로를 믿는 감정




언젠가 선생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OO아, 너는 자신감만 가지면 돼." 선생님을 존경하고 좋아했던 나는 선생님의 조언에 고개를 끄덕였고, 몇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의 뜻을 깨닫는다.


스무 살은 무언가를 시작하기 좋은 나이였다.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새로 만나는 사람보다는 늘 알던 사람 만나기를 선호했던 나는 스무 살의 용기를 얻어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사람을 향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물네다섯 살의 언니들인데, 그때는 언니들이 누구보다 든든했다.


우리에게는 사건이 있었고, 오해가 있었다. 반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우리의 관계는 애정에서 증오가 되었고, 오해를 해결할 새도 없이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진 나는 '내가 그렇지, 뭐.' 하는 마음으로 방학을 보냈다. 나의 스무 살 첫여름 방학은 그렇게 악몽으로 뒤덮였다.


스무 살의 상처는 스물한 살이 되어서도 낫지 않았다. 갓 입학한 후배들을 보며 '저들도 나를 소문 속의 나로 바라보겠지.' 생각했다. 스물한 살의 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대신 소문 속의 내가 되지 않으려 눈을 감았고, 새로운 이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즈음 선생님은 출판편집 강의를 위해 매주 수요일, 파주에서 내가 다니는 학교까지 수업을 오셨고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시인이자 출판편집자인 선생님은 첫인상부터 강렬했다. 붉게 칠한 립스틱과 굵게 파마한 짧은 머리.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출판편집에 대한 강의를 하며 선생님은 사람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실수로 놓쳐버린, 오해와 함께 무너져 내린 지난 관계를 돌이켜봤다. 돌이켜본다 한들 달라진다는 게 없는 걸 알면서도, 그때의 나는 어떻게든 지난 시간을 수정하고 싶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선생님은 내게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셨다. 그 속에 담긴 많은 말 중 '자신감만 가지면 너는 뭐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이 가슴에 꽂혔다. 대학에 입학해 두 번째로 보내는 여름 방학 동안 나는 다시 도전했고, 선생님 말대로 자신감을 가지려 노력했다. 


2학기가 되었을 때 나는 선생님께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그때의 나는 선생님께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나를 기억하셨지만, 나의 도전에 대해서는 큰 언급이 없으셨다. 나는 그런 선생님을 보며 '내가 무언가 잘못한 걸까.' 생각하다 수업에 열심히 임하는 것을 선택했다.

'

그리고 작년 겨울, 선생님을 뵈러 서울로 향했다. 그날 선생님은 출판편집자로서 한 시간가량 강의했고, 먼저 인사하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많은 데 강의를 나가잖아. 근데 OO대학교 애들은 다 기억해. 너도 그래." 하셨다. 선생님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나는 그 말이 좋았고 내가 여전히 선생님 기억 속에 있다는 게 좋았다. 선생님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내게 자신감을 가지라 하셨고, 나는 또 "네."라고 대답했다.


한겨울에 선생님을 뵙고 기나긴 취준생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선생님이 말한 자신감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감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 그것의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진 나는 인터넷에 '자신감'을 검색했다. 자신감은 'self-confidence' 즉 '스스로를 믿는 감정'이다. 자신감의 사전적 정의를 읽으며 얼굴이 달아올랐다. 선생님께 조언을 들을 후 다양한 것을 시도했지만, 그 속에 나를 믿는 감정은 없었다. 매번 무언가를 하면서도 나를 믿지 못했고, 짧은 글을 쓸 때마저도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라며 의심했다.


그리고 최근, 자신감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지금의 나를 믿는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눈앞에 닥친 상황을, 고통을 피하려 애쓰는 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과 조언하던 따듯한 목소리. 선생님의 눈에 비친 나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어떤 아이였을까.


스스로를 믿는 감정은 매번 나를 어렵게 하지만, 그 말을 해준 선생님의 얼굴과 마음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나는 자주 선생님을 찾고, 부르고, 기다리므로 나를 믿는 일 역시 자주 떠올리고, 찾고, 불러야 할 것이다. 나를 믿는 일, 누구도 아닌 내가 나를 응원하고 기다려주고 지지하는 일. 내 삶의 가장 큰 목표는 자신감을 가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각 금지, 시선 제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