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우유부단러 유자입니다
이곳에는 우유부단한 제 모습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이 시간이 힘겨울지라도 언젠가 펼쳐보았을 때, 웃고 있을 것만 예감이 들어서 말입니다 :D
한 살 깎여 다시 스물다섯이 된 취준생이자 백수, 유자. 한 살 깎인 나이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이는 곧 기나긴 취준 생활의 시작이 된다.
수많은 재능 중 우유부단함을 타고난 유자는 자주 머뭇거리며 선택을 미룬다. 작년,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한 유자는 작고 소중한 월급으로 기분이란 기분은 다 내고 다녔고, 올해부터는 아주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올해 4월, 생일을 앞둔 유자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묻는 언니에게 차마 '죽을 용기'라고 말하지 못한 유자는 남몰래 생을 마감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유자는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자주 생각했다. 추상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죽음은 하나의 감각이 되어 유자의 몸에 달라붙었고, 그걸 달라붙게 한 게 유자 자신인지 혹은 죽음인지 모를 만큼 둘은 가까워졌다. 어린 유자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울기도 했지만, 조금 자라서는 죽음이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죽음이란 곧 생의 마지막을 뜻하므로, 유자는 언젠가 자신의 마지막을 기대하기도 했다.
동시에 유자에게는 유자를 사랑하는 이들이 있다. 깊은 우울에 빠질 때마다 유자는 자신을 걱정하고 사랑해 주는 이들이 곁에 있음을 깨달았고, 실은 알고 있으나 스스로 그 마음을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받아들였다. 5월 중순부터 유자는 다시 밝아졌고, 어릴 적부터 지독하게 유자를 따라다닌 죽음과 우울, 불안의 그림자를 조금씩 멀리했다.
어느 날 유자의 아빠 '수'는 유자의 미래를 걱정했다. 어릴 적 '수'가 뱉은 말로부터 상처 입은 유자는 '수'의 입이 떨어지기도 전에 마음의 창을 닫았고, '수'의 말속에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했다. '수'로부터 더 이상 상처받기 싫은 유자는 그날 밤 일기장을 펼쳐 '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수'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았지만, 유자는 잠시 생각을 멈추기로 한다.
유자의 엄마 '희'는 눈빛으로 유자를 걱정한다. 노트북 앞에 앉아 무언가 하는 딸을 보며 "밥은?"이라고 물으며 딸의 안부를 묻는다. '희'의 말과 눈빛 속에 미워하는 마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유자는 스스로 위축되어 '희'의 시선을 피한다. 그렇다. 유자는 지금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한때 유자는 자기 연민 최대치의 인간이었다. 타인의 아픔보다는 내 아픔이 더 소중했고, 때로는 그것에 매달려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자는 새로 부임한 전공 교수로부터 자기 연민과 콤플렉스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다. 한 시간 남짓의 강의를 들으며 유자는 자신이 평생 매달리고, 자신을 평생 괴롭혔던 그것이 자기 연민이었음을 깨닫는다. 이후 유자는 자기 안에 있는 연민을 경계하려 노력했다. 때로 그것과 가까워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과 멀어지려고 말이다.
최근 유자의 하루는 익숙하면서도 지난하다. 돈 안 되는 것들을 사랑하는 유자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라는 모 카페의 홍보 문구를 떠올린다. '좋아하는 걸 좋아해.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 업이 필요해.' '우유부단한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그걸 유지하는 마음에는 어떤 노력이 드나.' 유자의 생각이 또 많아진다.
하지만 유자는 알고 있다. 시인인 선생님께서 주변부와 중심부에 대해 강의할 때, 나라는 사람은 주변부에 머무르는 사람이겠구나, 생각한 것을 말이다. 어쩌면 유자는 의도적으로 주변을 맴도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 둔 채, 괜히 이쪽저쪽 찔러보며 기회를 보다 아니다 싶으면 도망치고, 그러다 결국에는 좋아하는 것을 향해 몸을 돌리는, 그런 사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