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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연 May 20. 2024

벤치에 앉아 풍경 바라보기

바라보기




울창한 나무 사이를 걷다 사람 없는 벤치에 앉는다. 벤치 위를 조용히 기어 다니는 벌레와 개미를 손으로 털어내며 한때 나무였던 그것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다. 


함께이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을 때,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본다. 움직이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움직임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아 호기심을 갖고 바라보게 된다. 아빠는 이것을 '사람 구경 한다'라고 표현했다. 별생각 없이 사람들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밝아진 눈으로 그들을 구경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이 느끼는 행복이 내게 전해지고 나도 덩달아 행복과 편안함을 느낀다.


풀과 나무가 있는 곳을 걸으면 삶이라는 게, 걱정이라는 게 당연한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방향과 대책 없이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나무는 죽지 않는다. 미세먼지가 하늘을 덮고 흙 사이로 쓰레기가 스며들어도 나무는 몸을 키우고, 뿌리를 깊게 내린다. 나무의 삶의 방향은 오직 삶을 향해 있다. 나는 나무로부터 그 우직함을 배운다.


사람과 물질, 생각에 지칠 때면 두 눈 가득 초록을 담는다. 피어나는 것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녀서 그것들의 흔들림에 마음을 싣는다. 초록과 함께 흔들리는 마음은 곧 저만의 춤을 춘다. 굽은 어깨를 펴 팔을 펼치고, 그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음악 없이도 마음은 춤춘다. 제 속도와 리듬에 따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렇게 한참 마음을 내버려 두면 마음은 내게 다시 돌아온다. 아까와는 달리 가뿐해진 몸으로, 기분 좋은 춤사위와 함께 사뿐사뿐 걸어온다. 이제 괜찮아졌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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