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ingoreal Feb 12. 2024

타이중엔 진짜 박물관이 있다

단 한 곳을 가야한다면 타이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을!

  남편은 타이중 여행을 위한 스케쥴을 빡빡하게도 잡았다. 단 둘이 가는 외국 여행으로는 거의 21년만에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아이들을 위해서나 부모님이 함께 하는 여행지를 선택하다보니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단 둘이 가는 여행이다보니 중국이나 대만 쪽으로 기울게 되었다. 원래 일본에 관심이 많은 딸과 함께 일본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치사하게(?) 자신은 바쁘다면서 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빠지는 바람에 원래 주멤버가 아닌 남편과 나만 여행자가 되었다. 이미 딸이 빠진 여행에 큰 기대가 없었고, 남편은 중국어 소통이 가능하고 중국어권에 관심이 많아서 따뜻한 대만쪽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화려한 디저트를 지목하여 요기 요기를 꼭 들러야 한다고 남편에게 주문했다.

  다정도 병인가 싶은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크고나니 서로 사진을 찍어준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아이들이 빠진 여행이 어색하기만 했다. 아이가 없는 여행지에서 남편은 소년으로 돌아온 듯 신이 났다. 아침 저녁으로 늘 회사만 오가던 사람이 이렇게 활기있었나 싶게 여행코스를 빼곡하게 작성해두었다. 좋은 호텔은 왜 잡은 건가 싶게 아침 7시부터 나서서 밤 늦게 돌아오는데, 보통 매일 1만 5천보~2만보를 걸어야 잘 수 있는 일정이었다. 여행 준비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남편을 따라 뚜벅이로 버스를 갈아타면서 다니다보니 남편의 존재가 한없이 귀해지는 시간이었다. 중국어를 하는 남편에 곁에서 여행에서 내내 오직 '쉐쉐(谢谢)'로 버텼다(그마저도 남편이 그 발음이 아니라고 지적질했지만).



  심계신촌 가는 길에 타이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을 가볍게 들르자고 남편은 이야기했다. 원래 아이들이 가는 곳인데, 그래도 근처에 왔으니 가보자 하고 들어갔는데, 기대 이상으로 볼거리가 풍부한 곳이었다. 특별히 내가 과학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천과학관을 몇 번 가봤던 나로서는 화려한 국립자연사박물관을 가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렇게 멋진 곳이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 갈 장소로만 알려진 건가? 만약에 우리나라 박물관이 이렇게 디스플레이되었다면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많이 부럽기도 하고, 눈에 많이 담아두고 싶은 곳이었다.

한국에는 푸바오가 있다면 타이중엔 우주복을 입은 공룡 엄마랑 아기가 있다.  뒤쪽 공룡은  전시대에서 앞으로 튀어나오게 배치하여 관람자 동선까지 튀어나도게 배치하여 긴장감을 준다.



  나는 공간구성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특히 포모산 포유류의 이빨과 발톱에 대한 주제로 한 전시는 2023년 미국 뉴욕 디자인 어워드(Muse Design Award)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골판지 재질을 활용하여 전시하고, 입체감을 준 점이 인상적이었고, 책을 전시한 원형통이나 나무 모양의 책장이 심플해서 좋았다. 일반적인 빈백에 라탄 재질의 커버를 씌우니 그 자체가 주변과 조화로운 바위처럼 보였고, 숲을 배경으로 더 바위에 앉아있으니 세상 평화로웠다. 그들의 섬세함은 끝이 없었다. 동물의 똥의 형태와 발견된 장소를 모형으로 전시해놓았는데, 정면이 아니라 측면까지도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을 보고 저절로 '와!' 소리가 나왔다.

포모산 포유류에 대한 전시. 2023 뮤즈 디자인 어워드 은상.
박물관, 그냥 삶의 기록이 있는 곳이었다.

  박물관이나 과학관이라고 하면 정보를 전해준다는데 치중하기 쉬워서 예술적인 요소는 놓치기 다. 그러나 타이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고민을 거쳐 융합이 잘 이루어진 곳으로 느껴졌다. 생물의 출현 연대에 따라 전시해놓은 것이라든가 아무리 작은 디오라마라 하더라도 그 안에 사람들의 표정이나 느낌이 얼마나 생생하게 전달되는지 정말 '한땀 한땀'이 느껴졌다. 오른쪽의 젊고 발랄해보이는 아가씨와 세상을 살아본 원숙함이 느껴지는 왼쪽의 아주머니의 표정은 다시 한번 탄성을 지르게 한다. 이 모든 것은 지식의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루어낸 역사라는 것을, 한 시대가 사그러지고 또 한 시대가 태어나면서 이루어낸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 과정을 담는 대만사람들의 노력은 그저 칼같이 일을 나누고, 일을 해치우는 사람들은 닿지 못하는 경지에 오른 것 같다. 원시시대부터 부족생활을 하며 익힌 기술이 유리공예기술로 발전하며 그릇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을 표현하거나 마치 그 시대를 잠시 여행하듯 구성해놓은 조형물 앞을 떠나기 어려웠다.

부족사회의 모습을 재현해놓은 디오라마
손바닥만한 크기의 재현 모형

  싹이 땅에 떨어지는 것에서부터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생로병사'로 인생을 담아 의학의 기록을 펼쳐낸다. 이 모든 것이 아이들과 어른 모두를 위한 가장 사랑스러운 장소, 타이중 국립자연사박물관에 있다. 만일 내가 타이중에 가서 한 군데를 들러야 한다면 이 곳을 또 찾고 싶다.


생로병사 이렇게 풀이한다

   남편은 대형오징어 전시를 꼭 봐야 한다고 그 넓은 전시관을 찾아다녔는데, 결국 처음 출발지에서 지나쳤던 그 반건조오징어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패찰을 달고 다니는 박물관 직원일 듯한 사람에게 짧은 영어로 "Where can I get the giant squid?"라고 질문하여 그녀를 흠칫 놀라게 했다. 남편은 긴 중국어로 대형오징어가 전시된 곳을 묻고는 나를 놀렸다. 오징어 가져다가 뭐할 거냐고, 먹을 거냐고. 나의 짧은 영어가 남편의 중국어를 더욱 빛나게 해줬다고 생각나고 나는 아름답게 마무리를 지었다. (구글 번역기를 돌렸어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 귀국 비행기 면세점에서 깨닫고 얼마나 아쉬웠던지^^;; 돌아와서 영어 공부에 불을 붙이는 중이다.)


타이중 여행기를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 이야기거리가 또 남았다. ㅜㅜ 꼭 했어야 할 이야기를 아직 못했다. (타이중 여행기는 다음 3편으로 마무리하기로)


작가의 이전글 내돈내짠 타이중 학교 여행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