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유치원에서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
타이중에 대한 이야기 3편을 이어나가기로 했다가 모르는 척 다른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겨울방학때 여행 이야기를 늘어놓자니 벚꽃이 핀 지가 언제인데 케케묵은 이야기가 된 것 같아 슬쩍 꺼내놓기가 민망하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모르는 척 하고 다시 이야기를 꺼낼 날이 있을 것도 같다.
오랫만에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작년 2학기에 다문화 유치원으로 전보 와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 나는 처음엔 이방인이었다. 밖에서 언뜻 이야기로만 전해들었던, 다양한 문화 배경의 아이들을 직접 만나니까 기대도 됐지만 긴장도 되었다. 방글라데시, 베트남, 몽골, 스리랑카,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과 어설픈 발음으로 인사하기가 부끄러웠다. 그 나라의 발음을 한국말로 옮겨 인사하려고 준비했지만, 유튜브로 찾아보면 전혀 다른 발음이었다. 아이들의 이름은 길고, 국적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았다. 등하원시 어쩌다 다문화 배경의 학부모가 질문을 할 때, 내가 대답을 잘 못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히잡을 쓰고 아이 등원길에 함께 온 엄마도 '안녕하세요' 인사는 잘 하고, "몇 시에 끝나요?"라고 물어봐서 깜짝 놀랐다. 다문화 학부모들이 한국말을 잘 하는 사람이 많아서 의사소통이 원활한 편이었다. 학부모나 아이들도 너무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특히 불안해하거나 엄마와 떨어지는 것을 힘들어하는 아이가 거의 없어서 놀라웠다.
이전 유치원에서는 아침마다 유치원에 안 들어오겠다고 문 앞에서 엄마와 실랑이를 하거나 실내화는 신었지만 교실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3~4명씩 있었다. 아이들 각자의 상황을 다르지만, 울거나 떼를 쓰거나 하는 아이들을 잘 다독여서 교실에 들어가도록 유도하는 일이 원감이 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부적응으로 생기는 문제는 학기초에 많이 나타나는데, 학급에 마음을 둘 만한 친구가 생기지 않거나 담임교사와 래포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유치원의 하루 일과에 따르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아이들이 그러했다.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고 난 뒤 월요병을 심하게 앓는 아이도 있었고, 날씨가 궂으면 유독 까칠해지는 아이도 있었다.
나름 아침 등원때마다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다가 다문화 유치원에 오니 그런 아이들이 없어 딴세상 같았다. 2학기라 아이들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된 탓도 있었다. 원감이라고 해도 새로운 기관에 적응할 때의 어려움은 매한가지이다. 실제로는 더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나는 좀더 느긋한 다문화 학부모님들이랑 아이들을 통해 위로받으며, 새로운 근무지에서 마음을 잡았던 것 같다.
지난 학기, 나는 방글라데시 다섯살 아이와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어른이든 아이든 잘 웃고 호의적인 경우가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 쉽다. 나는 등하원 때마다 아이에게서 방글라데시 인사를 배웠고, 그 후로 하루에 하나씩 아이한테 단어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나중에 담임교사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굉장한 언어천재였던 것 같다. 방글라데시어, 한국어, 영어에 유창하며, 방과후 시간에 영어를 하면 날아다닌다(?)고 했다. 내가 어느날부터 이 아이에 대해 미심쩍게 생각한 것은 아이가 기본적인 방글라데시어를 틀리게 가르쳐준다는 것이었다. 나도 나름 전날 유튜브를 검색하여 '예습'이란 것을 했다. 원래 발음을 듣고 싶어서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물었는데 전혀 내 정보망에 없는 단어를 알려줬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생각했지만 다음날 어제 알려준 그 단어를 물어보니 오늘은 또 새롭게 알려준다. 내가 나의 작은 방글라데시 선생님을 의혹을 가지고 보게 된 것은 그 때부터였다. ^^;; 공짜 레슨을 받으려던 마음을 반성한다. 얼마나 귀찮았으면^0^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선물이라도 줬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작은 방글라데시 선생님과 우정이 거기서 더이상 이어가지 못했던 것은 모두 내 탓이다. 올 2월 환한 웃음을 지으며 작은 방글라데시 선생님은 졸업을 했다.
당시 부쩍 다문화 인사말에 관심을 가지고 퇴근하고 집에 와서 인사말들을 찾아보았다. '앗살라무 알라이쿰' 이라는 인사는 '당신들에게 평화가 깃들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었다. 무슬림들에게 다 통하는 이 인사는 아랍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하는데, 무슬림들은 모든 사람의 양쪽 어깨에 천사가 앉아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착한 일을 기록하는 천사와 나쁜 일을 기록하는 천사가 있어서 '당신들'이라는 복수 의미를 담았다고 하니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걸어갈 때마다 나를 지켜보는 천사가 있다고 생각하면 행동에 좀더 신중해질 수도 있고, 어찌 보면 나를 꼰질러바치는(?) 천사 때문에 피곤스럽기도 하겠지만 어떤 면에서 살아가면서 억울할 때, "너는 알고 있지?"라고 말이라도 걸어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말 뿐만 아니라 문화를 알아야 한다고 그랬나보다. 그 뒤로 나는 한국 유치원의 호스트 같은 역할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좀더 알고 싶은 학생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