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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oreal Jul 26. 2024

내 귀에 캔디

거슬리는 말들 그 정체

  특별히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보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 포털 페이지가 첫 시작화면이다 보니 내 눈을 휘둥그레 만드는 온갖 가십거리 기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서 최근 눈살을 찌푸렸던 기사는 <우천 시가 어느 도시? 학부모 문해력 수준에 교사 '한탄'>이었다. 온라인상에 어린이집 교사라고 소개한 이가 학부모들의 문해력이 너무 떨어져서 OO을 '금한다'거나 '우천 시' 행사장소를 바꾼다거나 하는 가정통신문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학부모들의 문해 수준을 우려하는 기사였다.

  처음 그 기사를 읽고 나서, 자신의 소소한 경험을 이렇게 방송으로 내보냈을 때, 그 어린이집 교사는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가 전하고자 한 이야기가 "요새 학부모들, 정말 무식해."에 있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중식'이 점심을 뜻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의사소통 문화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한자문화이고, 한자를 통해 지식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서 새로 글자를 만든 세종대왕이 계시지만, 한자가 포함된 단어들이 여전히 우리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우천 시'를 몰라서 문의한 그 엄마에게 교사가 "아, 어머니 비가 올 경우라는 말인데, 좀 어려우셨죠?"라고 말해줬다면, 다음번에는 그런 문의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한자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 생각해 보라. 우천 시가 비가 올 경우라는 뜻을 짐작하더라도 한자로 옮겨 적을 사람은 얼마나 있겠는가. 내가 아는 일부분으로 다른 사람을 몽매한 것처럼 몰고 가는 것이 마음 불편하다.

  얼마 전, 한 교육기관의 교육과정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SWOT분석을 통해 기관의 실태를 적어두었다. 그 분석에 따르면 약점이 바로 '유치원 프로그램에 대한 학부모의 이해 부족'이었다. 사실 이 말은 내가 교사 초임 때부터 잘 쓰던 말이었다. 학부모가 이 사전 분석을 볼 일이 없을 테니까 전혀 미안함도 느끼지 않고 썼지만, 이제 생각해 보면 이것은 굉장히 교사 중심적이며 일방적인 말이다.

 학부모가 지금까지 이해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한 것이지, 그들의 이해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말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학부모에 대한 안내 부족'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렇게 표현하면 상대방이 수용할 수 있고, 기회가 없었다는 측면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공개된 자료도 아니고, 편의상 이렇게 쓰겠다는데 왈가왈부하는 것이 짜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학부모에게 더 잘 안내해야 하겠다는 생각과 학부모는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다음번 중요한 결정에서 분명히 다를 것이다.

  다문화 학부모가 많이 있는 기관에 근무 중인 지인은 교사들이 "다문화 학부모가 많아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라는 표현을 자주 쓰길래, 그런 표현이 좀 문제가 있지 않은가 넌지시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 또한 다문화 유치원에 있지만, 부모들이 더듬거리며 한국말로 궁금한 것을 물어오거나 아이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물건을 전달하며 유치원 교육과정에 자녀를 맡기는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그들은 두 개의 다른 문화에 적응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배경의 부모나 유치원의 교육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나 결국 기관을 선택했으니 그들의 시선에 맞춰 같이 의사소통하면서 가야 할 사람들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 카톡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짧고 쉽게 의사소통했던 부모들이 격식 있는 문어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한탄할 필요는 없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데 부모들의 문해 수준은 자격 조건이 아니다. 물론 그렇다면 좀 더 원활한 부분도 있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가 23년간 가르친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의사, 교수 등 전문직인 경우도 있었고, 농사를 짓거나 해녀인 경우도 있었지만, 그들 누구도 문해력 때문에 아이가 힘들어진 경우는 없었다. 상식적으로 우리가 지인과 밥을 먹을 때도 "우리 우천 시에는 oo식당에서 만나서 중식을 먹자."라고 말하지 않지 않는가. 어쩌면 가정통신문을 좀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사용해 볼 생각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나는 띄어쓰기를 쓰거나 헷갈리는 표현은 표준어 맞춤 검사기를 이용하여 검색해 본다. 사실, 이것도 잘 몰랐지만 내 글을 읽던 딸이 추천해 준 것이다. 결국 의사소통의 문제이니 우리 생활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는 다양한 방법들을 이용하면 될 것 같다. 나는 경제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낮아 종이 신문을 볼 때, 경제면을 잘 보지 않는다. 경제도 인간 세상살이인데, 이렇게 모르다간 안 될 것 같아 <한국경제신문>을 구독한 지 6개월 정도 됐다. 어떤 기사는 친절하게 설명해서 따라가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배경 지식이 많이 필요한 것은 챗GPT의 도움을 받는다. 이 기사를 초등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쉽게 설명해 달라고도 하고, 내가 이해한 부분이 맞는지 점검하며 물어보기도 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알고 싶은 분야를 배울 수 있다. 나는 그런 면에서 나의 무식함을 한탄해 주는 주변의 수고로움도 없이 내가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기쁘다.


  부모들이 잘 읽지 않으니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기록을 자주 나가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물론 나의 동의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의 문제에 대하여 보는 각도는 여러 가지이다. 잘 보는 것 같지 않으니 안 하는 것이 낫겠다는 것이 맞는지, 그들이 잘 볼 수 있게 바꾸는 것이 맞는지 이 선택은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UX 디자인이라고 해서 사용자 경험에 기반하여 모든 것들을 맞추고 바꾸는 때에 일부를 안다고 해서 전체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것 아닌가? 아마 그런 마음이었다면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지금까지도 '추앙'받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육의 참여자들의 의견이 포함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해 우려를 느낀다. 그 많은 결정들이 결국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친절하면 어떨까. 왜냐하면 같은 목적지를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힘이 필요하다. 좋은 교육을 펼쳐서 사회의 좋은 구성원으로 키우는 것. 당장은 비생산적 일지 몰라도 함께 간다는 관점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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