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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탐험가 황다은 Apr 27. 2021

마을이 미술관이 되는 동네를 여행했습니다

"광주비엔날레 보실 겸 오신건가요?"

"아니요. 저 양림골목비엔날레만 보러 온 거예요!"

"정말요? 우와, 서울에서 광주까지. 너무 감사하네요."


여행을 다 하고 난 뒤에는 "와, 제가 너무 감사하네요. 이렇게 좋은 기획 해주셔서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여행.




그 여행은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본 문구 하나가 발단이었다.



마을이 미술관이다! 양림골목비엔날레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을이 어떻게 미술관이 될까? 라는 궁금증이 뭉게 뭉게 피어나 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광주행 기차표를 끊어 당장 보고 싶었다. 양림동이 위치한 광주에서는 더 규모가 큰 행사인 '광주비엔날레'도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광주까지 날아가게 만든 건 규모가 큰 예술이 아니었다. 그저 한 동네가 어떻게 미술관이 되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저 선교사들이 뿌리를 내렸던 곳이라고 알고 있던 양림동에,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궁금해 양림동과 비엔날레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도슨트 투어를 신청하고, 선교사 사택을 개조했다는 운치 있는 숙소도 예약했다. 그렇게 찾아간 광주 양림비엔날레에서, 나는 로컬 여행의 끝판왕을 경험했다


하루동안 이 모든 것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알차고 행복했지만, 동시에 여유롭고 평화로웠다. 그냥 유명하고 사람 바글바글한 관광지에서 여행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아니 도대체 양림동 골목의 비엔날레가 어쨌길래? 싶다면 같이 떠나보자.


장소 곳곳에 스며든 예술, 마치 일상처럼


내가 신청한 도슨트 투어의 시간이 신청 인원때문에 조정된 탓에, 새벽 6시 24분 기차를 타야 했다. 어마어마한 기차 시간에 가기 전에는 살짝 망설였지만, 덕분에 오전 일찍 양림동에 도착한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신의 한 수였다. 왜냐하면 양림동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거 내 인생 여행이 되겠구나'


평일의 양림동은 한적했고, 평화로웠다. 옛 정취가 남아 있는 듯한 정겨운 건물이 많았으며, 건물들의 고도가 낮아 하늘이 아주 잘보였다. 실제로 양림동 일대가 용적률이 낮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만든 시간 여행 마을이 아니라, 그 시절 기억을 머금은 듯이 천천히 걷는 동네에 온 기분이었다. 꾸며낸 레트로가 아닌 함께한 시간이 느껴졌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온 터라 투어 전 요기부터 해야한다. 오랜 역사의 빵 맛집으로 유명한 '양인제과'에서 크로와상으로 아침을 시작하기로 했다. 가게 앞에 단촐히 마련된 좌석에서 양림동 골목을 구경하며 크림 가득 크로와상을 먹었다.


그런데 빵 진열대 위에 놓여있는 작품을 혹시 눈치챈 분이 있을까? 이게 바로 양림골목비엔날레가 특별한 이유다. 양림동은 예전부터 예술가들이 많은 동네다. 양림골목비엔날레는 이러한 지역성을 살려 지역 작가의 작품을 마을의 밥집, 카페, 찻집 등에 전시하고 있었다. 


물론 한옥을 개조한 한의원미술관이나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이이남미술관 등 마을에 위치한 개성 넘치는 미술관도 있다.선교사 주택을 개조한 예술가 레지던스에서 작가들이 직접 전시하는 행사와 빈집에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젝트 등 그야말로 공간, 작가, 역사 등 지역성을 살린 콘텐츠들이 무궁무진했다. 


지역의 오래된 빵집에서 먹는 아침도 훌륭한 여행이지만, 그곳에서 빵을 구경하듯이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예술이라니. 신이 난다. 


이젠 도슨트 투어를 들으러 갈 시간. 잠시 여유롭게 골목길 산책을 해본다. 한옥이 예쁘게 개조된 골목을 따라가다 시작점인 '10년 후 그라운드'에 도착했다. 이곳은 말 그대로 10년 후까지 바라보며 양림동의 여행자라운지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다. 유치원이자 교회였던 곳을 개조했는데, 사실 내 상상 속의  '유치원이었던 곳을 개조한 여행자라운지'와는 너무나 달랐다.


멋들어진 벽돌 건물에, 근대 건축에서 볼법한 우아한 아치형 창문에 마당에는 이국적인 나무가 우수수 심어져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유화로 붓칠한 듯한 생생한 느낌과 우아하고 모던한 느낌이 공존한다.



아, 여행자 라운지답게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인냥 너무 잘 어울린다.

비엔날레가 아니어도 워낙 공간이 고풍스럽고, 디피되어 있는 로컬 제품도 다양하고 센스 넘쳐서 양림동에 다시 와도 꼭 가고 싶은 곳.


잠시 두리번거리고 있다가 도슨트님과 팀장님을 만났다. 광주비엔날레와 같이 볼 겸 온 게 아니고, 오직 양림동의 골목에서 펼쳐지는 비엔날레가 궁금해 서울에서 새벽 6시 기차를 타고 왔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끼셨다. 두 분이 너무 반겨주셔서 오히려 내가 더 감사했을 정도다. 


그렇게 햇살 좋은 날, 평화로운 양림동에서 시작된 투어는 선교사들이 양림동에 자리를 잡았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갔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건축물에 하나, 둘 이야기가 얹어지고 100년 전 선교사들이 살아 숨쉈던 역사가 눈에 그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알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시작해 근현대 역사와 예술의 동네로 자리잡은 양림동의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이남스튜디오, 건물 외벽에 전시된 광주의 무등산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자개 작품, 1920년대 선교사 주택 풍으로 지어진 찻집 등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오직 양림동만의 투어.


양림동에는 다양한 예술이 있다



고풍스러운 찻집 속 녹아든 어여쁜 작품, 한국풍의 찻집에서 관람하는 은은한 작품, 개성 넘치는 한옥과 선교사 주택을 개조한 미술관에서 만난 전시 등 양림골목날레 구석구석 관람기는 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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