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일 Sep 15. 2019

[걸어서 동네속으로] 북적북적, 추석 바이브.

일상적인 장소를 다르게 거닐기.

휴가 중에는 두 가지가 달라진다. 이 시기에 우리는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것을 보려고 애쓴다. 소위 휴양지라 불리는 곳들을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관찰의 인문학_알렉산드라 호로비츠


바쁘게 돌아가던 빌딩 숲도 연휴가 되면 일터가 아닌 하나의 풍경이 된다.

일상적이지 않은 날들, 그러니까 공휴일이나 명절에 일상적인 장소에 가 보는 건 장소가 주는 괴리감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기회다. 풍경은 변한 게 없지만 우리는 관광객으로 그곳에 간다. 누군가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미소 짓는 건 사실 좀 짓궂지만.


모두가 떠난 동네를 나른하게 걷는 일.  


명절처럼 일상적이지 않은 휴일에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은 단연 떠나는 것이다. 멀리 떠나도 재밌겠지만 이번에는 나에게 익숙한 장소로 떠난다. 추석 당일, 광화문과 경복궁 일대를 걸었다.

경복궁 주변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온갖 외국어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골목에 들어서자 온갖 화려한 한복을 갖춰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넘실댄다. 한복 대여소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실 도착하자마자 거대한 인파가 나를 당혹게 했는데, 명절을 맞아 텅 빈 동네를 기대하고 왔기 때문이었다.

돌담길을 돌아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간다. 소란스럽던 관광객들은 사라지고 조용한 주택가가 나온다. 모두 떠난 걸까? 관광지 근처에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효자동을 지나 통인동으로 건너갔을 땐 동네가 조금 더 차분했는데, 한산한 동네 속으로 관광객과 동네 주민이 자연스럽게 섞였다. 관광객들은 명절에 문을 연 카페에 들어가 자기들만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주민들은 개를 산책시키거나 가게 주인과 안부를 묻는 등 태연하게 일상을 즐기고 있었다.

모두가 떠난 동네를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걸으면서 일상에 쌓여있던 업무에 대한 피로나 고민거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촉박한 쉬는 시간에 시계를 보며 걷지 않아도 되니까. 주말을 낀 연휴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유가 넘쳐 보인다. 인왕산 자락 근처까지 올라갔더니 동네는 더없이 조용했다. 마치 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처럼. 그런 와중에도 어딘가의 창문에서는 웃음소리가 새 나온다. 복작한 도시는 제쳐두고 그들만의 명절을 보내고 있는게 아닐까?

통인동-누하동-누상동을 거쳐 다시 번잡한 서촌 먹자골목으로 내려온다. 상점과 볼거리가 아니고서야 동네에 즐길거리가 없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동네의 깊은 곳까지 들어오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빼곡하게 늘어선 주택들로 미로가 된 이 골목 안을 헤매는 것도 꽤 재밌는 여행이 되니까. 게다가 날씨와 운이 따라준다면, 이곳에서는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기회도 만날 수 있다.

 머리 위로 어떤 가족이 재잘거리며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떤 풍경을 보고 사는 걸까.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는 느낌은 어떨까. 여행은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장소에 엮이게 만든다. 여행자는 여행지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길을 걷는다. 여행지에 대한 판타지가 완성되어 갈 즈음 여행은 끝난다.


관광지는 여전히 관광지다. 추석 당일에도 서촌 일대는 붐볐다. 하지만 사진에 담은 동네를 비롯해 회사가 밀집해 있는 고층빌딩 안쪽은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시청 근처 고층빌딩 뒤켠에서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담배를 태우는 것을 봤는데, 그들은 아마 명절에도 일을 하러 나왔나 보다. 나는 모두가 떠난 낯선 동네를 걸으며 조금 차분해졌다. 놀러 온 사람들은 끝없이 어딘가를 오갔지만 아마 이쪽으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쉬는 날에 일하는 곳 근처를 배회하다니,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분주하게 돌아다니던 이 동네에서의 일상을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선택도 아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관광객들 대신 앞만 보고 걸어가는 직장인들이 겹쳐 보이고, 나는 그들을 관찰하며 여유롭게 웃는다. 연휴의 휴가지로 서울을 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날에 상투적인 장소에 가 보는 것은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나는 왠지 추석 당일의 광화문이 아닌 연휴와 일상의 가운데에 놓인 광화문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모든 여행은 그 괴리감 사이를 오가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이 작고 사소한 동네 여행도 특별한 경험으로 바꿔놓는 것 같다.


이제 다시 출근할 준비를 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걸어서 동네속으로] 그렇게 짧은 여행은 시작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