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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일 Sep 30. 2019

[걸어서 동네속으로]서울사람의 서울관광

오픈하우스 서울, 성공회주교좌성당

걷는 것은 자신의 길을 되찾는 일이다. 돌연히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질병과 슬픔을 이기고 앞으로 나아가면서 자신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이다.

느리게 걷는 즐거움_다비드 르 브르통


우리는 골목에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를 마주하고, '왠지 가고 싶어 지는 쪽'을 선택하며 길을 간다. 우리가 서 있는 이 골목길이 타지라면 조금씩 스며 나오는 두려움을 어떻게든 떨쳐내며 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던 이 침침한 길의 끝에 경이로운 풍경을 마주한다. 어떤 풍경을 숨기고 있을지 모를 골목길을 걷는 일은 우리네 삶과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 예측하기 힘든 풍경을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우리 또한 예측하기 힘든 하루를 살고 있으며 선택은 회사나 타인의 몫이 아닌 온전한 우리의 몫이다.


최근 Ddp에서 열린 건축 비엔날레를 관람하고 오픈하우스 서울이라는 곳을 알게 됐다. 건축 비엔날레 행사의 일환으로 서울에 위치한 각국 대사관과 역사, 건축에서 유의미한 장소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사관을 방문하지 못해 너무나 아쉬웠지만 반갑게도 성공회 주교좌성당 방문 프로그램이 있었다. 광화문 일대는 내 동네나 마찬가지이기에 보자마자 신청했다.

성공회 주교좌성당은 광화문에서 명동까지 걸어가며 스쳤던 장소다. 서울시청에서 바라보는 성당과 덕수궁의 조화는 정말 오묘해서 그곳을 지날 때면 늘 뒤를 돌아봤다. 요란한 경적소리와 함께 돌아가는 도시의 한가운데서 조용히 평온을 지키고 있던 성당. 가끔 수녀님들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무중력을 유영하듯 느리게 걸어가는 모습을 봤는데, 성당에 어떤 결계라도 쳐져 있어서 바깥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30분 일찍 성당에 닿았다. 쾨쾨한 매연과 사람들을 태운 버스가 내는 소음으로 가득한 시청 앞, 주교좌성당은 조용했다. 다음 날 프로그램은 90년대에 성당을 완공한 건축가 김원 선생님의 큐레이션을 들을 수 있었지만 오늘은 성당 성직자님이 진행을 맡으셨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삶을 상상하는 일.


내가 주교좌성당을 보고 관심을 가진 것이 1년도 되지 않았다.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이 장소에 성직자님의 설명을 듣자 공간은 입체감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 성당이 지어지고 나서 한국전쟁을 겪고, 성당 건축의 책임자 아서 딕슨의 설계대로 완공되기까지의 역사를 들었다. 70대로 보이는 성직자님은 곧은 자세로 성공회의 역사와 건물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설명해주셨다. 28년 인생 동안 종교라곤 가져본 적 없는 내가 성공회에 대해 알게 될 줄 누가 알았겠으며 늘 지나치기만 하던 이 장소의 깊숙이 와보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듯 우연한 선택과 결과는 일상에 깊이를 만든다.

바티칸을 비롯한 이탈리아 종교시설을 들어설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예배당은 들어서는 순간 하잘것없는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이 든다. 성공회 주교좌성당의 예배당은 높은 천장을 가진 회랑이 인상 깊었다. 밖에서는 불투명하지만 빛을 투과시켜 깊이를 만드는 스테인 글라스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조용히 들려오는 성가가 나 같은 무신론자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었다. 성직자님의 가이드를 들으며 꽤나 두 손을 모으고 싶어 졌다.

형형색색의 스테인글라스와 그것이 투과시키는 알록달록한 빛도 인상 깊지만, 회랑이 가진 깊이감은 이탈리아에서 이곳으로 그 감동이 이어졌다.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진 주교좌성당 내부는 수수하면서도 특유의 높은 천장과 회랑으로 여운을 주고 있었다. 나아가 천장에 달린 단아한 조명이 내 눈을 끌었다. 신성한 곳에서 물욕이 드는 순간이었다.

성직자님의 가이드에 따라 예배당을 둘러보고, 교회의 업무가 벌어지는 공간을 거쳐 지하 예배당을 구경했다. 한 시간 여의 열띤 가이드가 끝나고 참가한 사람들은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영락없는 서울 사람이지만,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녔다. 관광객이 된 느낌이었다. 관광객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보는 것을 멈춘다. 서울 사람의 눈에 서울은 더 이상 특별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정녕 이곳은 기시감으로 가득 찬, 놀랍지 않은 동네가 된 걸까? 나는 경리단길에서 시작된 -리 단길 열풍이 서울을 지루해지게 만든 데에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동네는 -리단길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된다. 모양을 따라 한다고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픈하우스 서울의 성공회 주교좌성당 견학을 신청하자 안내 문자가 왔다. 그 순간 나는 관광객이 된 느낌이었다. 끝나지 않을 업무를 처리하면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가이드를 따라 낯선 사람들과 성당을 거닐면서 나는 이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 도시와도 낯선 관계가 된 것 같았다. 이렇게 서울을 관광하는 느낌도 처음이다. 주변 환경과 너무 다른 분위기를 가진 공간을 발견하면 이 장소에 계속 머무르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이 평온함이 일상이 된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이 도시를 바라볼까? 여행은 장소와 내가 맺는 관계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낯선 관계에 놓인 장소와 사람들의 모습을 끝없이 상상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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