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인터뷰, 헛터뷰
희희는 ‘나와 우리가 더 기쁜 오늘을 만듭니다’를 모토로 활동 중인 프로젝트 팀입니다. 각자의 기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n 번째 캐릭터로 살아가며, 지난 6월에는 을지로에 공간을 오픈해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하고 있어요.
‘사람에게도 좋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는 희피리의 말처럼, 희희는 사람들에게 ‘기쁨의 레퍼런스’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전하는 기쁨의 한 가운데에는 ‘관계’가 있는데요. 좋은 질문이 결국 좋은 관계로 이어진다는 희희의 ‘인생젠가’에는 사람들을 엮어내고 기쁨을 전하려는 희희의 노력이 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의 일상 속에는 기쁨이 있나요? 허송세월 팀이 기쁨을 느끼는 순간은 참 다양한데요. 이를테면 어느 주말, 본캐도 부캐도 내려놓고 한갓지게 누워있는 순간이나 안다고 생각했던 동네를 걸으며 새로운 풍경을 마주할 때,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와 함께할 때 특히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에 6월의 허송인, 희희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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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피리 : 저는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이곳으로 사람을 모아낸다고 해서 ‘희피리’에요. 2년 간 ‘기쁨곡간’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다가 희희의 일원으로 합류하게 됐어요.
희대표 : 희희의 경영지원과 행정을 도맡고 있는 ‘희대표’입니다. 종종 구성원들에게 채찍과 당근이 되어주는 큰언니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희블리 : 우리들의 공동체를 보다 러블리하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희블리’를 맡고 있어요.
희대표 : 2019년, 마케팅 스터디를 함께하며 만들었던 젠가를 실제로 판매까지 이어지게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희희가 시작됐어요. 이름을 지을 때 각자의 이니셜을 따기로 했는데, 퇴사 후 공백기를 가지고 있던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 제 이니셜을 가장 앞에 넣기로 했죠. 남은 두 멤버의 이니셜이 같았는데, 모아보니 H E E 라는 단어가 됐고 이걸 연달아 발음해 ‘희희’라는 이름이 탄생했어요. ‘희희’를 발음할 때면 웃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입도 웃는 모양이 되는 것 같은데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잘 맞아 떨어지는 이름 같아요.
희피리 : 희희는 ‘나와 우리가 더 기쁜 오늘을 만든다’를 모토로 사람들의 오늘을 기쁘게 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 기쁨을 퍼뜨리기 전에 먼저 우리가 기뻐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고요.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나 친구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어요. 모두 N개의 캐릭터, 프로젝트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나 체력적인 면에서 기쁨을 빼앗기지 않는 선까지 움직이는 걸 원칙으로 하고 있기도 하고요.
희블리 : 이곳에 방문해주시는 분들이 희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자의 일상에서 기쁨을 회복했으면 좋겠어요. 나아가 자신이 어떤 기쁜 일들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길 바라고요. 그런 변화의 시작점에 희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희대표 : 우리가 기쁨을 추구하는 데에는 과거의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각자 우울에 빠졌던 적이 있고, 그 시간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저는 원래 감정이 한쪽으로 기울면 그것이 이끄는대로 내버려두는 편이었는데요. 그러던 중, 문득 제 스스로가 건강하지 않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이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감정을 조율해야겠다, 특히 기쁨을 빼앗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두 친구들과 함께하다보니 이제는 나쁜 감정들도 툴툴 털고 일어서는 심플한 사람이 된 것 같은데요. 과거의 저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요.
희피리 : 우리는 자존감의 영향으로 많은 것들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자존감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놓여있는 관계에서 비롯된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주변에 건강한 친구, 공동체가 있다면 나의 자존감도 건강할 수 있겠죠. 제가 느끼기에 건강하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수 있는 거예요. 그런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우리’가 되고, 서로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있을 때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여러 레퍼런스를 참고하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좋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타인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을 같은 시간에 부르기도 해요. 희희의 생각이 공간에 스며든 것인지, 방문해주시는 분들도 특히 서로를 긍정하게 되는 것 같아요. 나라서 기쁜 것이 아니라, 우리라서 기쁘다는 것을 공유하는 것이죠.
희대표 : 지금의 세상은 누군가와 관계 맺기도 어려워지고, 맺는다고 하더라도 깊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우리에게 좋은 질문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죠.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주고 받으며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젠가’는 ‘좋은 질문이 좋은 대화를 만들고, 좋은 대화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좋은 관계가 좋은 인생을 만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젠가를 통해 재미를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좋은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좋은 질문을 선정하기 위해 두 달간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희피리 : 개인적으로 에리히프롬을 좋아하는데요. 최근 ‘불복종에 관하여’라는 책을 봤어요. 거기서는 굴종과 복종을 구분하는데,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듯 불복종할 게 아니라, 무엇을 향해 불복종할 것인지를 질문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젠더나 환경, 노동, 여성 등 우리가 질문하지 않았다면 바뀌지 않았을 것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누군가 좋은 질문을 던져야 하고, 그게 실체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희블리 : 단조로운 우리의 삶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어쩌면 잔잔한 마음의 표면에 돌멩이를 던지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이것이 타인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자극이자, 인간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희피리 : 회사는 특정 목적을 위해 설립된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저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실현하기에는 한계가 따르는 것 같아요. 애초에 직업이 누군가의 인생을 대변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아실현을 굳이 회사에서 모두 이루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은 바깥에서 하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어요. 그래서 시간관리의 필요성을 느끼는데요. 단순히 스케줄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관리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한 것 같아요. 퇴근 후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회사에서 모든 에너지를 쓰면 이곳에서 쓸 에너지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것들을 잘 조율하는 연습을 해보고 있어요.
희대표 : 어느 순간부터 제 인생이 직업으로 귀결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일하는 건 분명 즐겁지만, 우리는 일만 하고 살지는 않잖아요. 나아가 ‘딸’이나 ‘매니저’ 등, 나를 수식하고 있던 역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오롯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시도해보기 시작했고, 두 친구들을 만나 희희를 하게 됐죠.
희블리 : 첫 직장을 그만두고 디지털노마드가 되고 싶었어요. 핸드폰과 노트북만 있다면 어느 곳에서도 일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싶어 마케팅을 배우기 시작했죠. 거기에는 내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선택을 강요받는 게 아닌, 선택의 주인이 되고 싶었죠. 게다가 회사에서 발현시키기 어려운 에너지를 잘 맞는 사람들과 바깥에서 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희피리 : 직장을 다니면서 좋아하는 걸 하려다 보니 루틴이 생겼어요. 대표적으로는 아침 기도 시간이 있는데요. 제가 ‘경탄’이라고 표현하는, 하루를 시작하는 것에 감사하는 시간이에요. 그리고 퇴근 후 사람들을 만나거나 글을 쓰고,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은 나와 약속을 잡는 것도 루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스스로와 약속한 시간은 밀려오는 것들로부터 저를 지키기 위한 시간이에요. 부러 시간을 내 쉬지 않으면 많은 일을 이어가기 어렵더라고요.
희대표 : 저는 원래 루틴형 인간이 아니었는데, 희희를 시작하고 조금씩 바뀌고 있어요. 과거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아내는 삶을 살았다면, 지금은 희희를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야근을 줄이는 삶을 살게 됐죠.
희블리 : 저도 루틴형 인간은 아니지만, 여러 일들을 해내야 하다 보니 살아가는 기준이나 태도를 정하게 되더라고요. 거기에 어긋나는 것들은 냉정하게 쳐내는 연습을 하고 있고요. 최대한 단순하고 심플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언젠가 DDT(Digital Detox Time)라는 원데이 프로그램을 했는데,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 와이파이를 꺼놓는다든가, 핸드폰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온전히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어요. 마케팅을 하다보면 SNS를 들여다 볼 때가 많은데, 그것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나에게 몰두하는 시간을 갖고자 해요.
희블리 : 출퇴근 하면서 음악을 고르는 시간이요. 저는 날씨나 분위기에 맞춘, 저만의 플레이리스트가 있는데 그게 잘 맞았을 때 희열을 느끼거든요. 어떤 분위기나 날씨에 놓여 있을 때, 거기에 맞는 음악을 상상하는 게 좋아요.
희피리 : 저에게는 행복한 일상을 보내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있는데요. 계절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시를 쓰지 않으면 제대로 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반대로 계절따라 바뀌는 길가의 작은 풍경들을 만날 때, 그것을 보고 시상이나 글감을 포착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희대표 : 사진첩을 보면 유난히 나뭇잎에 걸린 하늘을 많이 찍어요. 살랑거리는 나뭇잎을 담고 싶어 동영상을 찍는데, 그 밑에 드러누워 있거나 멍 때릴 때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제주도에서 일을 했을 때는 파도치는 걸 계속 보는 것이 좋았고요. 그리고 누군가를 먹일 때도 좋아해요. 먹는 즐거움을 제공했다는 데서 오는 기쁨이죠.(웃음)
희피리 : 취미가 많은데 지속되는 건 몇 없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건 일단 해보는 편이라 춤도 춰보고, 피아노나 기타도 쳤다가 그림도 그렸다가 하고요. 작년부터 가사를 쓰기 시작했는데,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친구들에게 내용을 주고 곡을 쓰게 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나와 같은 것을 본 것도 아닌데 비슷한 느낌으로 곡을 만들어주는 친구도 있고, 전혀 다른 곡을 가져오는 사람도 있어요.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이 많아 사람들에게 불려질 노래를 써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또 하나는 신학공부인데요. 저에게는 종교가 내면의 가치기준이나 존재 목적을 잡아주기 때문에 제가 믿는 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너무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단순히 위안과 의지의 도구로 종교를 믿는 게 아니라, 종교로 인해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 같아요. 신에 대해 알게 돼야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테니까요.
희대표 : 저는 독학을 좋아해요. 언어도 많이 배웠고, 지금은 코딩을 배우고 있어요. 스스로 찾고, 공부해서 나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서 기쁨을 느끼나봐요. 아직 그 습관이 저를 대성하게 해주지는 않았지만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됐죠.
조금 더 작게 쪼개보자면, 알게 모르게 관찰을 많이 해요. 특히 사람들을 주로 관찰하는데, 타인의 행동이 나타내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빨리 알아채는 것 같아요. 독학을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은데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나 모양을 보고 그것이 왜 그렇게 되는지를 궁금해 하는 것 같아요.
희블리 : 최근에는 티소믈리에 과정을 들었어요. 7월이면 자격증이 나오는데, 8월에는 희희에서 찻자리를 한 번 열고 싶어요. 작년에는 퇴사를 하고 유튜브에 집중했었는데요, 그때 업로드 한 호캉스 브이로그가 인기를 얻어 다음 달에 가는 호캉스에서는 더 잘 찍고 싶네요. 그리고 롤러스케이트! 날이 좋을 때 타야하는데 컨디션 문제로 타지 못해 아쉽네요.
희블리 : 모든 순간에 영감을 받기 때문에 허투루 쓴다고 생각되는 시간은 없는 것 같아요.
희대표 : 한때는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SNS를 하는 게 시간을 허투루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만큼 하는 것 같아요. 대신 그 안에서 내가 허투루 쓴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이것도 내가 필요해서 한 거라고 생각해요. 단순한 게임도 내 일상에 도움을 줬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사람들이 허송세월이라고 부르는 시간 조차도 낭비가 아닌,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희피리 : 최근들어 시간을 운용하지 못하고 휩쓸렸다고 생각되는 시간은 잠들기 전, 핸드폰 하는 때에요. 잠깐의 시간이지만, 하고 나면 항상 기분이 안 좋더라고요. 재밌게 놀 때도, 쉬거나 잠을 잘 때도 기분이 안좋았던 적은 없었는데 그저 습관이 된 이 행동이 다음 날 아침에 피로감을 주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