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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화 Apr 27. 2019

엄마의 설거지와 못된 식솔들.

 강의 중에 가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와 아내가 집안일을 해나가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중에 한 청중이 말을 이어받았다.

중년의 아저씨였던 그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며 자신의 방식을 말해주었다.

여러 가지 말들이 이어졌지만 그중 내 가슴에 박힌 말은 "설거지를 자주 해주면 버릇이 나빠진다"는,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내뱉으면 야유와 비난을 폭격처럼 받을 그 말이었다.

강의실에는 어디서 세어 나오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야유가 곳곳에서 흘러나왔고 나는 조심스럽게 맞벌이 여부를 물었다.

 그는 당당하게 맞벌이 중이라고 대답했고 순간 나는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떠올랐다.




 우리 집의 거의 모든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거의라고 표현하는 건 아버지가 한 일도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인데 그 몇 가지 일은 고장 난 물건을 고친다거나 무거운 가구를 옮기는 등의 남자로서 지니고 있는 선천적인 힘과 관심사에 대한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래된 옛집들이 으레 그러하듯 한여름에 출몰하는 애기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를 겁이 많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대신해 때려잡는 것도 물론 아버지만의 몫이긴 했다.

 이런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가사라고 불리우는 모든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늘 상을 차리고 상을 치웠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 자식들이야 간단한 아침과 저녁만 먹이면 될 일이었지만 가내수공업을 했던 남편에게는 밥과 찬이 갖춰진 세끼를 차려내야 했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못돼 먹은 식솔을 가진 덕에 오랜 세월 그 번거로운 가사는 오로지 엄마의 일이었고 버스기사가 버스를 운전하고 우체부 아저씨가 편지를 배달하듯 가족 모두가 엄마의 그 노동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우리 집은 평화롭게 굴러갔다.

 엄마의 노동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노동은 무척이나 고단하고 고달픈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 부끄럽게도 30대가 되어서 독립을 한 이후였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식탁으로 나가면 밥이 차려져 있었고 밥을 먹다가 국이 싱거워 간장을 찾으면 언제나 엄마는 간장을 가져다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내가 사용한 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옮겨 물을 담아 놓는 것으로 나는 착한 아들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한 밤중에 목이 말라 컵을 가지러 간 싱크대에는 언제나 깨끗하게 씻겨진 후 물기를 말리고 있는 엎어진 그릇들이 보였다. 그렇게 내가 신경 쓸 겨를도 필요도 없이 집안의 모든 것은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순조로움이 엄마의 고생이라는 것을 독립해서 살기 시작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엄마는 얼마나 힘이 들고 귀찮았을까. 모든 가내수공업이 그러하듯 엄마 역시 그 수공업에서 하나의 손으로 역할을 했다. 아침을 차려 남편과 자식들을 먹인 후 빠르게 치우고 나면 엄마는 집 한켠 "일방"으로 가서 조금 일찍 일을 시작한 아버지와 합류했다. 점심때가 되면 "주방"으로 돌아와 또 밥을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했다. 이 과정은 오후에도 다름이 없었고 저녁때가 되면 또다시 4인분의 밥을 차리고 치워야 했다.

나는 왜 이 심각한 불합리를 모른 채 살았던 걸까. 어렸다는 핑계를 댈 마음도 들지 않을 정도로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아버지가 미워졌다. 자신과 비슷한 양의 수공업을 하며 살림을 병행하는 아내에게 살림 솜씨가 없다며 핀잔과 구박을 심심치 않게 하지 않았는가. 단 한 번도 엄마의 수고로움을 알아주지도 않은 못난 30대의 아들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엄마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아버지에게는 미운 마음을 먹는 것뿐이었다.


 독립 후에 본가에 들러 엄마 아버지와 둘러앉아 커피를 마실 때면 엄마와 한편이 되어 아버지를 구박하는 일이 잦았다. 예와 같이 아버지가 엄마의 살림에 대한 잔소리를 할라치면 아버지가 살림을 안 해봐서 저런 소리를 한다며 떨어진 간장과 소금을 사본 적도 없고 어떤 수세미가 쓰기 편한지, 냉장고 청소가 얼마나 귀찮은 일이고 깜빡해서 음식물을 상하게 만들어 내버리는 일은 가사에 있어 얼마나 일상적인 실수인지를 내가 앞장서서 받아쳤다. 엄마는 박수를 쳐가며 나의 응원단이 되어주고 이제는 충분히 늙어버려 힘이 빠진 아버지는 두 모자가 아주 신이 났다며 그 구박을 즐겁게 받아준다.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그녀의 수십 년간의 고생을 자양분으로 나의 몸과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지 않았는가. 엄마의 남은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야하는 의무가 나에게는 있는 것이다.




  아내가 차려준 밥을 맛있게 먹은 뒤 싹싹 비운 그릇들을 포개어 싱크대로 옮긴다.

쌀뜨물 성분이 들어가 있는 세제를 그물 수세미에 잔뜩 묻혀 비빈다.

거품을 많이 만들어낸 후 그릇들을 씻는다.

미끌거리던 그릇들에서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의 그 쾌감을 나는 알고 있다.

애초에 뭐든 서로 잘하는 것을 하자고 말했다.

아내를 음식을 잘하고 나는 설거지를 잘하니 우리의 역할 분담은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면 아내는 언제나 고맙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도 맛있는 밥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서로 고마워하는 것. 서로 미안해하는 것.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안좋은 예를 통해 나에게 가르쳐준 부부생활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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