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이야기하다.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뒷면 때문이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바다로 뛰어든 한 소녀를 누군가 한 사람은 생각해야만 한다면,
그건 바로 나여야만 했다
바다로 뛰어들어야만 했던 소녀와 그를 생각해야만 했던 이에 대한 궁금증은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읽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예상과 다른 시작
첫 장을 읽을 때는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카밀라’라는 낯선 외국이름의 한국 입양아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대한 ‘바다’와 ‘소녀’의 이야기와는 멀게 느껴졌다. 입양아의 친모 찾는 이야기 인가 싶었다. 그러나 ‘친모를 찾는 입양아라는 건 진부하기 그지없네. 나는 다른 식으로 행동하고 싶어.’라는 책 속 카밀라의 말처럼 소설은 매우 다른 방향을 향해 흘러갔다. 작가는 독자로 하여금 사랑 이야기 인가했다가 아, 입양아 스토리구나 하며 방심하게 하고, 갈수록 추리 스릴러물 같이 소름 끼치는 진실에 대한 추격전을 펼쳐 놓는다.
소름은 제2부부터
1부까지는 스토리 자체에 대한 큰 감흥 없이 읽어나갔다. 그저 작가의 길을 걷는 카밀라의 입을 빌려 곳곳에 새겨진 김연수 작가님의 표현력에 감탄하기에 바빴다. 어떤 감정들은 깊이가 너무 깊어 몇 번이고 곱씹어봐도 닿을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2부에 들어서며 그것들은 그저 휘황 찰란 한 묘사들이 아녔음을 깨달았다. 1부는 본격적으로 진실을 찾기 위한 밑그림에 불과했다. 소위 그 ‘떡밥’들은 2부에부터 하나둘씩 거둬지기 시작한다. 진실에 목메기 시작하는 카밀라와 이를 막으려는 자들, 그리고 심연을 넘지 못한 자들의 섣불렀던 선택들이 죽은 자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점점 카밀라보다 더 진실에 애타게 되는 독자는 그때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끝을 향해 달린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엔딩
마지막은 바다로 뛰어들어야만 했던 소녀와 그를 생각해야만 하는 이가 진실 앞에 오버랩되며 막을 내린다.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 진실만이 남는다. 진실은 ‘우리’라는 제3부의 제목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심연’으로 퍼즐이 맞춰진다. 퍼즐이 맞춰지면 이 책의 앞부분으로 가 다시 한번 찬찬히 왔던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림을 알고 보게 된 퍼즐 조각은 또다시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다가온다.
너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이 소설 끝무렵 지은이의 물음은 나의 말문도 막히게 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이에게 쉽게 건너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편에서 본 저편이 전부일 것이라 착각하며 섣불리 판단한다. 마치 내가 이 책의 1장 만을 읽고 진부할 것이라 속단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작가가 말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심연’이 실존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읽고 어쩌면 제3부의 ‘우리’는 나였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다른 이 사이의 심연을 무시한 채 쉽게 속단하고 섣불리 행동했던 나는 다른 이를 바다로 빠트린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심연을 넘어가 볼까 시도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이에게 건너가 그 사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적이 무수히 많았음을 발견했다. 지은이처럼 날개를 찾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내가 본 것이 전부인 것처럼 판단해버렸다. 김연수 작가님은 어쩌면 그런 ‘우리’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결국 사랑 이야기도, 추리 스릴러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