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끄적이 Apr 16. 2022

세상을 다 가진 아이

더없이 포근한 봄날이었다. 이른 오후라 부모의 손을 잡고 하원하는 유치원생들이 여럿 보였다.

그중 한 손에는 엄마의 손을, 다른 손에는 푸른 잎사귀 하나를 흔들며 가는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아이가 작은 두 손안에 세상을 다 가졌다 생각했다.


계속해서 길을 걷다 이번에는 버스에서 내리시는 어르신에게 시선이 멈췄다. 한 손에는 장 보신 찬거리가 한가득, 다른 한 손으로는 본인만큼 연로한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부축하고 계셨다. 나는 그 어르신도 세상을 다 가졌다 생각했다.


부족함이 느껴지고, 결핍 속에서 허우적대는 요즘, 쫓고 있는 것들은 이미 가진 것들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무엇인가를 움켜쥐기 위해선 두 손 가득 있는 것 중 어느 것 하나는 내려놓아야 한다. 나의 손을 잡아주는 소중한 이들과, 이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계절 중 어느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걸까. 


이토록 부족한 사람 곁을 지켜주는 이들의 손을 꼭 잡고, 눈부시도록 빛나는 지금의 계절을 온전히 걸어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다 가진 것은 아닐까. 소중한 것들은 이미 우리 곁에 양손 가득 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역시나, 가장 소중한 것들은 우리가 이미 가진 것들인가 보다. 


Image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태어난 김에 열심히 살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