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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Dec 28. 2023

오늘도 사랑할 수 있는 힘, 에세이의 말들

방학이 왔습니다.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설레는 다짐을 하기도 합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이라

시작도 하기 전에 괜스레 아쉽기도 합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학이라 하면 눈뜨면 놀러 다니기 바빴는데

겨울 방학이라 그런지

집에서 짜임새 있게 보내고 싶어집니다.

시간 계획표를 짠다고

어린아이가 잘 따라오긴 만무하지만요.



방학 준비를 하려고 서점에 갔습니다.

정확히는 엄마의 마음 준비를 하려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을 찾았습니다.



서점을 좋아합니다.

예전부터 마음이 복잡하거나

생각이 많아지면 서점을 찾습니다.

내가 읽지 못한 수많은 지혜들의

제목만 만나도 이상한 나라에 입성한 듯

현실과 단절되고 편안해집니다.



서점에서 책을 읽는 타입은 아닙니다.

보통은 책 제목을 보고

쓱 한 문단 정도 읽어본 후 사 옵니다.

가끔 잘못 산 책 때문에 골치 아플 때도 있지만요.



시간이 많지 않기에

사고 싶은 책 몇몇을 미리 적어갔습니다.

책 더미를 한 아름 가득 품고

새로 들어온 책을 눈에 담고 있었습니다.



카톡이 울렸습니다.

생을 저버리려 했다는 유명인 소식에

책 꾸러미를 놓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제발 살려 달라고.

생명이 그리 우스운 것인가 탄식하고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유명인의 소식을 들은,

희망이 없는 닫힌 공간에 갇혀 있을 누군가에게

혹여나 좋지 않은 영향이 갈까 봐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가져온

살 책 목록을 적은 종이는

이미 꾸깃꾸깃 주머니 안으로 넣은 채,

유명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던

과거의 장면이 하나씩 스쳐갔습니다.



제발 살려달라는 혼잣말을 되뇌며

다시 발걸음을 옮겨

계획에 없던 에세이 책장 앞에서

제목에 이끌려 발길을 멈추고 울컥했습니다.



사랑에서 멈추었습니다.


사랑에서.



이화정 작가의

<아름다움 수집 일기> 책등에는

"오늘도 사랑할 준비를 한다"라고 쓰여있었습니다.



저는 인생에

사랑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빼면 인생을 논할 수 없지요.

남녀 간이나 부모 자식 간 사랑과 같은

인간관계 이외에도 모든 사물에 대한 애정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늘 서로에게 사랑임을,

우리가 사는 모든 순간에 곁에 사랑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저희 집 대문에는 문구가 있어요.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무엇이 있습니까."



순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에세이를 좋아하는지.

왜 소설보다는 에세이 타입이었는지요.

경제 경영 서적을 찾으러 서점을 가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지나치지 못하는 아이처럼

에세이 책장 앞에서 제목을 읊고 있는지를요.



무언가를 반드시 이루지 않아도

흘러가는 삶을 솔직하게 그린 이야기더라고요.

무언가를 꼭 이루지 않아도

당신은 가치 있고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더라고요.

애정을 가지고 사랑을 담으면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꽤 훌륭하다고요.



아마 자신에 대한 사랑마저 저버린 선택이었겠지요.

스물 무렵, 엄마와 둘이 뉴스를 보며

어느 유명인의, 사망 소식을 들었어요.

그날의 거실은 왜 이리 넓고 허망하게 느껴지는지

엄마와 둘이 하염없이 서서 앉는 걸 잊은 사람처럼.

서른 무렵, 마이애미 숙소 한 켠에서

어느 유명인의, 사망 소식을 들었어요.

하얀 벽 움푹 팬 모서리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아마도 언젠가 오늘도 그리 기억하겠죠.



여러 해 전에는 예쁜 아이가

아기 천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저는 죽음이 싫습니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걸까요.

늘 고목같이 그 자리에 계셨던

핏빛 없는 서늘한 할아버지를 보면서도

그리 덤덤했었는데 이상합니다.

누구의 죽음인들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당연히 개인적 친분은 없지요.

그런데 아직도 그 순간이

너무나 슬프고 가슴이 미어집니다.

당신에게 에세이처럼,

마음을 다독여줄 한 사람만,

하나의 말만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의 서점 일탈이 끝났습니다.



아이의 방학 준비를 하러 서점을 방문했다는 것도,

아이의 책이 아닌 엄마의 책만 마음에 담고

열댓 권 사 온 것도 너무 우스워졌어요.

어찌어찌 서점에서 얻은 온화한 마음으로

다정한 3주를 보낼 준비를 마쳤습니다.

자, 이제 방학입니다.



아이와 함께 근사한 방학을 만드시길 바랍니다.




/ 2023년 12월 28일 04:3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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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식물 친구들을 들였습니다.

제발 죽지 말아 주세요.


https://blog.naver.com/claranote 에는

시답잖은 일상 사진과

짧은 코멘트도 함께 올렸습니다.

브런치에는 사진이 글을

방해하지 않길 바라며 글만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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