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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Jan 01. 2024

새해, 집밥을 해먹을 결심

12월 내내 줄곧 생각한 건, 과연 2024년을 어떻게 만들어낼까 였습니다. 2024년을 어떻게 보낼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낼까 라니.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이긴 하지만 그만큼 일을 벌여봐야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했습니다. 12월 땡 치자마자 요즘 공부 좀 한다는 엄마들 사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증'을 시작했습니다. 새해에 무엇을 이루겠다는 일종의 확언이었습니다. 어떤 걸 이루자 하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이 시작했기에 12월 내내 만들어가고 생각해 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시작부터 허무맹랑한 원대한 목표가 난무하며 사진 찍고 공유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다른 분들처럼 매일 녹음까지는 아니었고 설렁설렁 의무적으로 하는 듯해 보였지만 사실은 꽤 신경 쓰고 고심하며 인증했습니다. 12월 한 달 내내 새해의 모습을 그렸다 하면 2024년 1월 1일이 된 오늘, 무언가 나왔어야 하는 거죠?



2024년을 잘 보내고 싶어요. 아니, 정확히는 '나도 아직 죽지 않았다' 외치고 싶은 것 같아요. '한때 능력 있던 젊은 여자'라는 시선에 반발해, 한때가 아니라 어떤 모습인들 열정 넘치는 '사람'임을 증명해 내고 싶습니다. 어느 하나는 포기할 줄 알아야 현명한 태도임을 알지만, 인간 통념을 거슬러 '어느 정도 두루 해내는 지혜로움'을 발휘하고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각인된 모습에 반항하고 싶은 약간의 반골 기질을 죽이고 싶은데 사람의 본능은 쉽사리 감출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달 내내 새해의 모습을 그렸지만 무언가 명쾌한 해답을 얻진 못했어요. 신앙, 성장, 공헌, 가족, 건강, 자유를 나눠 목표를 설정했지만 좀 더 나아가 구체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 뒤로 타임 테이블이 필요하고요. 워낙 골똘히 생각했던 터라 종이 한 장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조용한 새벽, 이런 고민과는 관련 없는 동떨어진 책을 읽다가 덮었어요. 문득 정리하려 골머리 썩지 말고, 사사롭다면 사사로운 대로, 중하다면 느껴지는 무게 그대로, 풀어헤쳐야겠다는 생각이 번쩍했습니다.



집밥 얼마나 해드세요?

                    

값비싼 물건을 소유하려 들진 않지만 집안은 온통 쓸모 있고 예쁘고 귀여운 것으로 채웁니다. 취향이요, 이 취향이 있는 사람은 짜게 살기가 어려워요. 흥청망청 지출을 하진 않아도 일에 손을 뗀 지금은 소비는 언제나 부담스러워, 새해에는 가계 재정이 손에 잡히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맨 처음 떠오르는 건 가계부. 그리고 '집밥'이었습니다. 가계부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워요. 생각을 기록하긴 쉬워도 제 지갑을 들여다보는 건 왜 이리 게을러지는 걸까요. 그리고 집밥. 가계부와 집밥이란, 제겐 가사, 육아, 일, 이 3가지를 모두 완벽하게 해내는 '완벽한 사람'인 듯한 부담으로 다가와요. (가계부는 아직도 시작할 엄두조차 못 내고 있습니다.)



이번 주, 배달 앱 이용헀나요?


보통 배달을 잘 시켜 먹지 않는 집은 배달 음식이 정해져있더라고요. 한식은 절대 시키지 않고요. 치킨, 피자 정도고 가끔 시켜도 짜장면 정도에서 끝나더라고요. 배달 앱, 얼마나 이용하세요? 저는 자주 애용하진 않지만 그래도 급할 때마다 아이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핑계로, 육퇴 후 달콤한 보상을 취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별거 다 시켜봤습니다.



요리를 못 하냐고요?

요리를 꽤 잘하는 편입니다만, 사실 저희 집은 맛있는 음식만 먹는 매우 입 짧은 엄마와 아이, 둘만 끼니를 해결하면 되거든요. 배달은 맛없고 아깝지만 미리 식사 준비를 할 시간을 갖지 않는 엄마는 급한 불 끌 수 있어요. 집밥은요? 훨씬 맛있지만, 둘이 해먹으면 생각보다 먹는 것보다는 사실 버리는 게 많아요. 요리 꽤 하는 엄마는 아이가 먹는 음식 말고 엄마를 위한 음식도 따로 하니까요. 하지만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해낼 수 없다'라고 제 스스로 한계선을 그어놓았던 것 같아요. 물론 새해에도 제시간을 빼서 밥을 짓을 생각은 없지만 어떻게든 집밥을 조금 더 늘려보려고 해요. 배달은 치킨, 피자만 시켜보고요. 



어느 집의 집밥



어느 집 하나.

매년 연말이 되면 초대해주는 친구가 있습니다. 남편이 말하길, 이 친구 한 명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학교 동기 언니인데, 선천적으로 타고난 요리 금손이에요. 재능보다 더 빛나는 건 그녀의 넉넉한 마음씨와 삶을 대하는 태도예요. 제가 존경하는 사람이죠. 



언니 집은 저희 집처럼 온갖 유혹 거리가 즐비한 도심은 아니고 중심부에서 조금은 벗어난 숲세권에 있어요. 차갑도록 맑은 공기가 눈으로도 선명하게 보이는 느낌이랄까요. 언니의 배달 음식은 역시 치킨뿐이에요. 집밥 사진만 보면 엄청나게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뚝딱뚝딱 만드는 게 '코스 요리' 버금갑니다. 언니처럼은 아니지만 요즘 언니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업이 food marketer라서요)처럼 저도 올해는 clean food를 먹고 싶어집니다. 


<어느 집 하나> 2023 연말 파티 ©보르댕홈 https://blog.naver.com/claranote




어느 집 두울. 

올해는 감사하게도 연세대 영어미술 선생님들이 모여 연말 파티를 했어요.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영광이었죠. Bye-bye 2023 Year-end  Potluck Party였어요. Potluck Part는 각자 음식을 싸와서 함께 나눠 먹는데 의미가 있어요. 저는 집이 멀다는 핑계로 케이크와 꽃을 준비해서 죄송할 만큼 너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셨어요. 연어와 아보카도를 정갈하게 넣은 김밥, 밀가루나 부침가루 없이 계란 물로 만 알록달록 채소를 부쳐낸 전,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지는 콩 샐러드, 생채소를 찍어만 먹어도 고급스러운 요리가 되는 소스. 음식의 솜씨를 보니 평소에도 이렇게 해 드실 것 같더라고요. 조금의 정성만 들이면 생각보다 간단하고 건강한 요리를 먹을 수 있어요.



매일 더, 하루가, 지나가는 시간들이 아까워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돈이 들지만 제가 있는 공간을 제 취향으로 채우고 아이가 있는 공간에서 아이의 취향을 존중해 주려 했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음식도 마찬가지였어요. 머무르는 공간을 아름답게 채우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스스로를 이끌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건강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는 것 또한 하루를 채우는 중요한 일들 같습니다. 



Potluck Party ©보르댕홈 https://blog.naver.com/claranote




어느 집 세엣.

대기업에서 높은 위치에 계신 분. 누구보다 바쁜 위치에 해외 출장이 잦은 엄마. 그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벅찰 듯한데 배달은 거의 시키지 않는다고 해요. 집안 어르신 부재로 김장 김치가 그립다고 말씀하시는데, 순간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는 김장 김치가 남아도는데'라는 생각에 부끄러웠어요. 역시, '모든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라는 제 마음속 인간 통념은 스스로 만든 핑곗거리에 불과했습니다. 



<어느 집 하나> 2023 연말 파티 ©보르댕홈 https://blog.naver.com/claranote





새해에도 저희 집 모든 구성원이 '식구'라는 단어에 걸맞게 매 끼니를 함께 할 순 없겠지요. 세 사람의 시간 관리는 변함없겠고 저 또한 지금도 최대한 시간을 쪼개서 쓰고 있지만요. 2024년에는 좀 더 하루를 펼쳐서 써보려고요. 욕심일 수도 있어요. 허황된 탐욕인지 변화하는 과정인지는 노력해 봐야 아는 거니 섣불리 휘둘리진 않겠습니다. 물론 정 안 되면 배달 앱을 켜도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 핑계를 대고 싶어지나, 이렇게 하나씩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 2024년 1월 1일 3:00am 

글을 쓰고 제목을 정하니, 집밥을 해먹으려고 이렇게까지 결의를 다질 일인가, 재밌어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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