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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e Y Apr 12. 2024

봄의 새벽은 너무 잔인해

+ 봄의 새벽은 너무 환하다.



열심히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열심히 사는 삶 그 자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이런 삶의 패턴은 남들과 다른 삶이라는 비교로 얻는 승리감이자 워커홀릭 같은 최선 중독자의 양상이라고 어느 전문적인 심리학 서적에 나올법하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아닐런지. 



근 열흘 동안 육아에 경고 종이 울렸기에 새벽 러닝을 포기했다. 일주일 만에 5시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5시 50분쯤 공원으로 나서는데 '어헛? 생각보다 너무 밝다?'.


어두운 새벽 공기를 맞으며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만족감이 대단했나 보다. 너무 밝아서 오늘 아침 러닝으로 기미가 수천 개는 생길 거 같고 너무 늦게 나온 기분이다. 거만함이 그지없지만 내가 '남들보다 일찍 시작하는 삶'에 대한 자부심 홀릭에 단단히 빠졌나 보다. (글에 너무 적나라한 솔직함을 담았다 한들 박주희라는 사람을 거만하다 오해하진 말아주시기를.) 일주일 만에 이렇게 밝아질 수 있는지 이제는 좀 더 일찍 새벽 공기를 찾아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 




+ 오디오북을 듣는 최적의 시간. 



러닝을 하며 밀리의 서재를 듣는 이유는 단순하다. 시간을 아낄 수 있어서. 예전에는 오디오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는데 러닝을 하며 들으니 이렇게 명확하게 귀에 팍팍 꽂힐 수가 없다. 주로 가벼운 재테크 소설이나 글쓰기 책을 듣는다. 너무 심오한 책을 펼치면 모르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계속 멈추게 되고 러닝도, 귀로 하는 독서도 모두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지난주 밤 러닝을 하며 들은 책은 <기록의 쓸모>이다. 작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완독을 하고 보니 SNS에서 꽤 유명한 작가인가 보다. 추측건대 미혼 여성일 테지만 놓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하지 실천하기가 영 어렵다. 육아, 일, 집안일, 재테크 등 기혼이 아니더라도 회사 일에 치여 인간 구분을 짓지 않아도 누구나 일상에서 다른 일을 하나 더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작가는 마음이 맞는 동료와 모여 목요일 퇴근 후 9시부터 3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는 모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3명이 함께 한 모임은 일 년이 지나자 12명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요일, 인원수는 정확하지 않다. 지금 나는 생각나는 대로 적고 있다.)







기록의 쓸모저자이승희출판북스톤발매2020.05.21.



오늘 새벽 러닝 하며 들은 책은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이다. 표지도 제목도 내 스타일 아닌데 요즘 너무 글을 통 못 써 갈증 났다. 남의 글 쓰는 이야기라도 듣고 싶다. 게다가 마흔이라잖아! 오십분을 걷고 뛰면서 듣길 잘했다. 나는 특별하지도 엄청난 삶을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와 비슷한 누군가에게 말하듯 글을 쓰는 작가가 존경스러워진다. 내가 요즘 글을 못 쓰는 이유, 2024년은 분명 action의 해라고 잡아놓고도 정작 실천하지 못하는 핑계도 바로 '너 까짓 게 뭐라고?' 때문인데 책에서 정확히 말해준다. 대부분 글쓰기 책에서 제시하는 글쓰기 원론을 인정하면서도 과감한 듯 소심하게 반항하는 글 모양도 재미있다. 나는 지금 작가의 조언에 따라 그저 아무렇게나 오늘 아침 느낀 바를 적어본다. 작가가 점심시간에는 글쓴다를 5년 째 실천하는 것처럼 나 또한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맞춰 몇 글자 적어본다. (직장인이 아닌 아줌마 프리랜서라 밀린 업무도 회사에 보여줘야 하고, 세탁기에 잔뜩 들어있는 옷을 건조기에도 옮겨 넣어야 하지만.)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저자권수호출판드림셀러발매2024.02.05.



+ (진짜 하고 쓰고 싶은 생각) 발과 머리가 따로 놀아요.



새벽 러닝은 한 시간한다. 말이 러닝이지 거의 조금 뛰다 걸어버리고 다시 뛰다 걸어버린다. 그렇게 5km를 한다. 뛸 때는 너무 힘들다. 몸이 아니라 눈이 힘들다. 오늘 그 해결책을 찾았다.


눈이 힘든 이유는 발이 눈을 따라가느라 버거워하는 걸 가슴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러닝을 하면서 내가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되었다. 차근히 풀자면 이런 거다. '저 앞까지 가야 하는데'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며 너무 먼 곳을 바라본다. 발은 눈이 바라보는 머리가 생각하는 목표지점을 향해 바쁘게 움직인다. 그러다 몸이 지쳐버려 다시 걷게 된다. 신기하게도 빠르게 건든 천천히 걷든 걸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바심이 금세 사라져버린다. 조금 걷다가 '이렇게 걸으면 안 되지' 하는 마음으로 뛰기 시작하면 다시 반복된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게 되었다는 말, 조금은 알아차렸는지?



맞다. 너무 먼 목표를 보며 달려가느라 벅찬 거다. 천천히 주위를 보며 걸으면 다시 편안해지지만 이내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걸 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발은 지금 내가 잠시 밟고 스치는 땅을 정확하게 제대로 밟아보지도 못한 채 헐레벌떡 지나가버린다. 크고 원대한 미래의 목표만 바라보다가 정작 단단해야 할 오늘이 흐지부지 되어버려 시간을 쌓았는데도 아쉬운 마음이 남을 뿐이다.



'마지막 한 바퀴만 제대로 뛰어보자.'


'이번엔 눈 앞 정면이 아니라 시선을 조금 높여 가까운 하늘을 바라보자.'


'발 하나하나 꾹꾹 눌러 뛰어보자.'



신기하게도 난 마지막 바퀴 1200m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이것 봐. 나도 해낼 수 있는 사람이었네!







/ 2024년 4월 12일 _ 11:40 - 11:55  _ 10 분 글쓰기 마침.


(맞춤법 검사, 퇴고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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