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삶의 활력소
착각으로 행복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 전영임
기억을 더듬자면 그 순간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습관적인 착각이라는 아름다운 병을 가지고 있다. 더러는 이런 나를 이해 못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이런 내가 좋다. 경험으로 보자면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착각이라면 자신의 삶을 훨씬 풍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타인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싫지 않다. ‘날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 생각하나?, 내 인상이 좋은가?’ 타인의 시선을 받으면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좋은 기분으로 살짝 미소를 지어 준다.
그 순간 내 안에 꽃이 피고 나는 참 행복하다. 물론 바라보는 표정이나 눈빛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긍정적인 느낌을 가지기로 한다. 그렇게 되면 타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고, 두렵지도 않으며 오히려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는 그렇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 움츠려 들고, 불안했으며, 나의 외모를 둘러보기도 했다. 거울을 꺼내 본 적도 있었고 ‘나한테 무슨 문제가 있나?’ 불안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시선이 무척 부담스러웠고, 두려웠으며, 거리를 다니는 것조차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 그럴수록 자존감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자신감을 잃은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내가 착각이라는 병이 참 긍정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우연한 기회가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좋은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타인이 나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은 어쩌면 착각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우연하게 왔다.
십여 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내가 사는 영주에서 대구에 갈 일이 있었다. 물론 나는 혼자였고 직접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운전 실력이었고 처음 나서는 길이라 두려웠다. 출발을 하고 한 시간이 안 되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다부 터널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터널 안을 달리는데 차의 핸들이 저절로 틀리더니 갑자기 차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의 일이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해 다행히 차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떨어진 간을 주워 제 자리에 맞추며 터널을 빠져나와 도로에서 좀 먼 곳에 차를 세웠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했다. 내 뒤에는 검은색의 suv 차량이 따라오고 있었다. 뒤따라오던 차량이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서 있었다. 먼눈이라 차 안에 탄 사람을 분간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아마도 교양 있고 멋진 남자가 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앞서가는 내가 휘청거리다 겨우 터널을 벗어나 차를 세우니 ‘괜찮으냐?’는 걱정을 하며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인가? 나는 창문을 열고 감사의 마음을 목례로 인사를 했다. ‘세상에는 마음이 참 좋은 사람도 있구나, 참 살만한 세상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좀 전의 놀란 마음이 가라앉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곧 다시 운전할 수 있는 용기로 바뀌었다. 안전하게 나는 대구에 있는 언니 집에 도착을 했고, 다시 안전하게 내가 사는 영주로 돌아왔다.
시간이 오래 흘렀다. 아마 10년도 더 흘렀을 것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보복운전으로 이런저런 사나운 뉴스들이 보도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역시 완전 운전 초보 시절 어떤 사건이 생각났다.
몹시 무더운 여름이었다. 아스팔트는 폭발할 듯 뜨거웠고 태양은 작열했다. 세무서 앞 사거리를 지나는 길이었는데 나는 우회전을 하는 중이었다. 초보 운전자가 어떻게 자신 있게 우회전을 할 수 있겠는가? 우회전을 하면 바로 횡단보도가 있기에 늘 그 길은 조심하던 길이었다. 그날도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눈치를 보며 기어가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 신호가 직 좌 신호로 변경이 되었고 좌회전하는 택시가 보였다. 내가 우선으로 우회전을 했기에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계속 울렸다. 운전만 하기도 급급했고 나는 달리 잘 못 한 것도 없었기에 다음 신호까지 관심도 두지 않고 운전을 했다. 하지만 다음 신호 대 앞에서 나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수난을 당하고 말았다. 한 택시 운전자가 내 옆에 바투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려 열어놓은 내 조수석 창문으로 몸을 반쯤 밀어 넣고 얼굴이 벌겋게 화를 내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의 우회전 경로를 내가 방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경적을 울리며 나에게 항의를 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는 나는 미안하다는 사인 하나 없이 오던 길을 유유히 오고 있었으니 까칠한 그 아저씨는 몹시 화가 났었나 보다. 오른쪽 입시울 쯤에는 요지를 질겅거리고 씹고 있었고, 왼쪽 입시울에는 하얀 거품이 말할 때마다 뽀글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여편네가 말이지 집에서.......” 그 시절 흔히 남자들이 하던 말을 그는 거침없이 내뱉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 어서요, 죄송합니다.” 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몇 분 동안 퍼붓던 그 사내는 “운전 똑바로 하고 다녀요 알았어요?”라며 획 돌아 우회전을 했다. 아, 그다음이 문제였다. 중형차를 운전하고 오던 남자 한 분이 내 옆에 차를 세우며 차창을 내렸다. 신호가 빨리 초록으로 풀리길 바랐지만 내 바람은 무시되었다. “아줌마가 잘 못 한 건 없어요. 오늘 X 같은 놈 하나 만났다고 생각하세요. 괜찮아요?” 하며 걱정해 주는 게 아닌가? 그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운전도 못 할 만큼 펑펑 솟았다. 아마도 나를 위로해 주는 그 말에 택시 운전자에게 받은 설움이 폭발했나 보다. 나는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운전을 못했다. 더욱 택시를 타고 다녀야 했었는데 타고 보니 입에 게거품을 물었던 그 운전사의 얼굴을 백미러로 보고 기겁을 하고는 백 미터도 못 가서 내린 적도 있었다.
티브이 뉴스와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서 터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날 그 운전자도 몹시 놀라고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를 걱정해 준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이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고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좀 멀었던 거리, 시력이 나빠 잘 보이지 않았던 내 눈과 나의 착각이 그가 하는 욕에 대해 귀를 막고 내 마음대로의 해석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나는 두려움 없이 계속 운전을 할 수 있었고 무사히 대구를 다녀왔다. 만약 그날 그 운전자가 나를 향해 화를 내는 모습을 봤다면 나는 거기서 꼼짝달싹도 못했을지 모른다. 나의 아름다운 착각이 용기를 가져왔고, 감사함을 배웠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저렇게 위로가 되어 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듯 착각은 용기가 될 수도 위로가 될 수도 있다. 지나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고 해가 되지 않는 착각이라면 적당한 착각은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살라고 권유하고 싶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착각을 하고 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