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간 후 나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태풍도 아닌데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쨍쨍하던 태양이 숨고 10여 분도 되지 않아서였다.
그러더니 이내 조용해졌다가
다시 몇차례 다녀가기를 반복하더니 해가 지면서 비는 그치고 서늘한 바람이 분다
마치 가을을 막 들어선 바람 같다.
저녁 5천보 걷기를 시작한 지 14일 째 운동장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겼다.
그 물웅덩이 안으로 가로등이 첨벙 뛰어 들었고 나뭇잎들은 머리를 풀어 헹구고 있다
세찬 바람에도 순하게 흔들리는 나무잎들이 서로 맞부딛히며 내는 소리를 글자로 표현하려면
'사라락'이라고 해야할까? 부딪는 소리도 부드럽다.
어디쯤 걸을 때였을까?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어둠속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 흐느낌이 너무 커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속에 숨어서 흐느끼는 그 나무는 어깨를 들썩이고 온 몸을 떨며, 흔들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있었다.
통곡은 아니었다. 숨죽인 울음이었다. 어쩌면 아무에게도 들키고싶지 않은 울음일지도 모른다
나무가 이렇게 숨죽여 우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있는 일이다.
얼른 달려가서 꼭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꾹 참는다. 내가 아는 척 하면 나무가 더 슬퍼할 기회를 잃게 하는 것 같아서 참기로 했다
귓전으로 멀어지는 나무의 울음소리를 남겨두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곤 다시 가지 못했다.
나무도 나도 서로 마주치고싶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운동장을 벗어나 학교 건물 주변을 어슬렁걸으며 5천보를 채웠다. 오늘은 땀나는 운동보다 산책하기로 마음을 바꿔먹었으므로.
늦은 퇴근길에 그 나무앞을 스쳐 지나간다
못 본듯 지나가고 싶었지만 온몸을 뒤흔드는 나무의 모습이, 숨죽인 울음소리가 다시 내 발목을 잡았다
저만치 구름속을 드나들며 그믐달도 나무가 걱정되는지 자꾸 기웃거리고 있었다.
"울지마라 나무야! 무슨일인지 울지마라! 아니 실컷 울어라! 더 큰소리로 울어라, 다 울고나면 눈물이 마르듯 슬픔도 보송하게 마를거야!"
어둠속에 나무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라디오에선 Don't Cry For ME Argentina 노래가 애잔하게 울려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