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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Nov 16. 2023

SALE의 뜻은 살래?

얼마 전 쇼호스트들 모임에 참석하여 홈쇼핑과 라이브커머스 방송을 진행하면서 있었던 온갖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쇼호스트들 답게 방송 중에 했던, 본인이 생각해도 기가 막혔던 멘트들에 대한 자랑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사은품을 딱 들었는데 갑자기 요즘 핫한 대사가 팍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고객님! I'm 공짜예요 그랬더니 스튜디오가 난리가 났어요. 카메라 감독님 웃느라고 막 카메라 흔들리고"


"저는 사과 먹다가 실수로 뱉었거든요? 아차 싶었는데 바로 고객님 사과 과육이 꽉 차고 탱탱해서 제 입을 튕겨낼 정도네요 하고 겨우 넘어갔어요. 그런데 협력사에서 그 멘트 너무 좋았다고 다른 데서도 쓴다네요?"  


쇼호스트들의 혀를 내두를만한 순발력에 감탄하면서도 그들의 멘트를 들으며 마치 mbti처럼 그들도 유형이 나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000회 넘게 방송을 하다 보니 수많은 쇼호스트들의 멘트를 듣고 기억이 나는 유형들이 있어서 가볍게 소개해볼까 합니다.


1. 말장난형

홈쇼핑 방송이 특성상 조금은 딱딱하거나 상품 설명 일변도의 형식으로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타개하고자 말장난을 꺼내드는 쇼호스트들이 있습니다.


"고객님! 오늘 70% SALE을 하잖아요! 근데 SALE이 무슨 뜻입니까? 그대로 읽어보세요. 살..래? 

어떠세요 바로 사셔야겠죠? 남은 시간 안에 빠르게 구매 부탁드립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차종 중에 테슬라도 있어요. 요즘 테슬라 차 난리잖아요? 아! 남편분들 이 방송 보여주지 마세요! 테슬라로 하자고 떼쓸라!! 죄송합니다"


대부분 썰렁함과 민망함을 다시 재미 포인트로 잡기도 하지만 가끔 듣고 진짜 폭소를 터뜨릴만한 이야기도 있어서 방송도 재미있어지고 현장 분위기도 좋아진 적도 많습니다.



2. N행시형


특집 방송이나 한참 방송 분위기가 좋을 때 그 열기를 그대로 이어간다며 N행시에 도전하는 쇼호스트들이 있습니다. 


"김! 김치 삼겹살 저도 참~~ 좋아하는데   치! 치사하게 선배님 자꾸 혼자 드시네요! 저도 한 입 주세요!"


"프! 프라이버시 지켜주세요   라! 라면 먹는데 찍으시면 곤란해요   이! 이러시는 이유가 뭐예요?  팬! 팬이세요 혹시?"


N행시의 경우 대부분 미리 준비해 오는 것이라 퀄리티가 상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퀄리티와 무관하게 대부분 현장에서 동료 쇼호스트가 얼마나 맛깔나게 운을 띄워주고 리액션해주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려서 미리 합을 맞춰보기도 합니다. 가끔 즉흥적으로 N행시에 도전에 끙끙대는 모습이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3. 꽁트형


특히 연기학과 출신이거나 연기자 출신인 쇼호스트들이 그들의 재능을 활용하는 경우입니다. 정말 느닷없이 상황극을 시작해서 동료 쇼호스트가 당황할 때도 있고 둘이서 미리 합을 맞춰와서 선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빠! 크리스마스 곧 다가오는데 우리 어디가??"

"걱정 마!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뭘 다 알아서 해! 서울에 괜찮은 호텔은 벌써 예약 끝났던데?"

"뭐??? 큰일이네.. 큰일이네.. 어떡하지.. 어떡하지.."

"으이그 내가 그럴 줄 알고 오늘 기막힌 호텔 패키지 상품 가지고 왔잖아"


"어머니~ 제가 준비한 생신상이에요! 한번 드셔보세요!"

"어머! 아가 네 손맛이 원래 이렇게 좋았니? 아주 맛있구나"

"이번에 조금 신경 써봤어요! 여러분 제가 00 불고기 산거 비밀로 해주세요!"


대부분 꽁트형의 경우 자연스럽게 상품으로 이어지며 끝나서 방송 흐름상으로는 가장 무난한 형태입니다. 또한 쇼호스트들이 연기를 하며 밀려오는 민망함을 이겨내려는 모습이 또 한 번 재미를 만들어냅니다. 



어떻게든 방송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며 상품 설명은 물론이고 이런 감초 같은 부분까지 철저하게 준비해 오는 쇼호스트들을 보며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또 방송 매출이 너무 안 좋아서 분위기가 다운될 때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며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화면 뒤에 숨어 있는 PD로서 미안함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가끔 그냥 쉬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으면 쇼호스트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쇼호스트에 도전해 보겠다고 쉽게 말하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쉴 새 없이 말을 하며 그 멘트가 고객들의 구매 심리를 자극해야 하고 심지어 한 번씩은 방송 분위기를 위해 무리수(?)까지 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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