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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 아빠곰 Jun 22. 2017

아저씨의 생일은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생일을 축하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아저씨에겐 무지막지한 선물이 약이지!

아저씨의 생일은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지난 주말, 나의 생일이 있었다. 


지난 주말, 나의 생일이 있었다.

아니, 문장이 좀 이상하다. 지난 일요일은 내 41번째 생일이었다. 

생일을 맞이하여 미역국보다는 빵이 좋으니 아침에는 빵을 먹고, 우리 동네에는 케익이 맛있는 집이 없어서 사 주겠다는 케익도 마다하고 나니 생일을 생일이게 만드는 의식 중에는 생일선물을 받는 것밖에 남질 않았다. 그런데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초 정밀 가공한 메이드인 코리아 메탈 스피너가 3만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떴기에 새벽에 주문을 해 버려서 어쩐지 그것이 생일선물로 대체되고 말았다. 그리고 난 뒤에는 정말 생일을 생일이도록 만드는 행위 중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아, 그런줄 알았는데 가족들이 길에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 주었다. 두 번 불러 주었다. 매 해 잊지않고 기프티콘으로 선물을 주시는 분도 계신다.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매년 같은 금액의 생일축하금을 어김없이 보내 주셨다. 



본인의 생일 파티를 순수하게 즐기며 참여할 수 있는 나이는 언제까지일까?



본인의 생일 파티를 순수하게 즐기며 참여할 수 있는 나이는 언제까지일까? 개인차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글쎄.. 10세? 정도였던 것 같다. 어제까지 재미있던 것들이 시시해지고 서로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고 어울려 놀던 친구들이 서먹해지는 시점. 그 후로는 가족 행사로서의 생일파티 외에는 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대학에서 첫 해 정도는 동기들끼리 생일 축하 자리를 가졌었고, 회사원이 된 후는 가끔 생일이라고 한잔 먹고 온 적이 있나? 뚜렷한 기억이 없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생일 세레모니가 다시 시작된다. 돌잔치가 그렇고, 그 후로도 10여 년간은 정성을 다해 생일을 보낼 준비를 해야 한다. 특히 우리집 애는 생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1타 쌍피를 기대했었으나 몇 년 가지 못하고 생일과 크리스마스 각각 선물을 요구해도 된다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똑똑한 놈.


애 생일 챙기고, 그 밖에 챙겨야 하는 날들을 챙겨야 하는 형식에 맞추어 챙기다 보면 내 생일을 챙기는 것조차 귀찮고 덧없이 느껴진다. 남이 챙겨 주는데도 부담스럽다. 이런 날은 지하철이나 자전거 같은 적당한 이동수단을 타고 가까운 곳으로 혼자 가는 거다. 책 두 권, 좋은 오디오 혹은 헤드폰, 헤드폰을 연결할 좋은 스마트폰. 적어도 내가 지금 쓰는 것만 아니면 된다. 공짜폰으로 바꿨더니 용량이 적어서 이미 꽉 찼거든. 요런 것들을 오래 쓸만한 괜찮은 가방에 넣어 둘러메고 뚱뚱한 사람도 발이 편한 괜찮은 운동화와 몸에 붙지 않고 여러번 빨아도 각이 살아 있는 셔츠를 입고 가면 좋다. 


단골이지만 너무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은 것은 아닌, 취향과 배경을 공유하고 있어서 언제 가도 편하고 창의적인 상태를 만들어 주는 카페에 들어간다. 주인장과 눈 한번 마주치고 의미없는 인사말을 나눈 다음 해가 살짝 비껴 드는 창가 구석자리에 앉아서 20%는 내 장비에, 40%는 책에, 20%는 사람 구경에, 20%는 기분좋은 공기를 즐기면서 2시간 30분 정도를 보낸다. 그리고는 집에 문자를 보내서 저녁 먹을 궁리를 한다. 


내가 사는 동네와 주로 다니는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적당한 가격의, 괜찮은 재료를 사용해서 그 음식이 유래한 고장만의 고유한 풍미를 제대로 살린 음식을 내며, 손님을 불편하지 않게 하면서 여유롭게 서빙하는 식당에서 즐거운 식사를 하고 난 후 선선한 밤 공기를 느끼며 투스텝으로 집에 돌아온다. 


중년 남자의 생일은 이런 느낌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면 괜찮은 기계류를 하나 사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을 것 같다. 신동급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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