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하나 그리고 둘, 을 처음 봤을 때 나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서부터 아려왔다. 나도 말할 수 있는데, 나도 할 수 있는데 라는 시기와 부러움, 환희가 가슴 한편을 묵직이 만들었던 강렬한 기억이 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다시 보게 되는 작품, 영화는 반복적으로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늘 보인다. 특히 이 영화는 한 가정의 모든 세대가 거의 동일하다 싶은 분량으로 나눠져 있기에 언제 다시 보아도 새롭다. 우리가 흔히 겪는 뚜렷한 줄거리도 서사도 없이 한 가정을 천천히 관조한다.
막내아들(초등학생), 딸(중고등학생), 아버지(중년), 처남(갓 결혼한 사람), 할머니 등 각 나이별로 나눠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 동일한 분량의 주인공들은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래서 이 다섯 세대의 이야기들을 쭈욱 흡수하고 나면 삶을 보는 시선이 가히 바뀌는 체험까지 하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지 모든 세대가 모든 것을 동일하게 겪고 함께 늙어가는 것이지..
쉬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유년 시절 수영하는 같은 반 여자아이를 보고 막연한 호감을 느끼는 아이,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지만 막상 만남을 가져도 잘 되지 않는 딸, 오래 사귄 여자를 두고 갑자기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해 결혼하게 된 처남, 평생 잊히지 않는 오랜 사랑을 앞에 두고도 인생을 회고하는 중년의 아버지, 죽음 앞에 가만히 병상에 누워계신 할머니들, 등 이 영화는 인생이 쉬이 되는 것이 없음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인생이 점차 쉬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진득하게 생각하는 나이가 돼야 이 영화는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에드워드 양은 영화 속 조금은 유치해 보일 정도로(혹자에게는?) 자기가 생각하는 영화관이나 영화에 대한 철학을 배우들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장례식을 찾아가 손자의 편지로 마무리되는데, 이 영화가 에드워드 양의 유작인 만큼, 이 편지는 에드워드 양의 유서처럼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고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감독, 감독은 할머니가 돌아가신 곳까지 찾아내겠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영화를 네 번째 봐서야 들렸다. 에드워드 양은 죽음까지 예술로 찾아내고 닿겠다고 말한 것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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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 생각엔 제가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 같은데, 할머니 저는 아직 어리잖아요
제가 나중에 커서 뭘 하고 싶은지 아세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그들이 모르는 걸 알려주고 볼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럼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언젠가 시간이 흘러 할머니가 가신 곳을 알아낼지도 몰라요
그럼 그곳이 어딘지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 같이 할머니를 보러 가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