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시간들을 통과하고,
스무 살, 청승맞은 시절을 보낼 무렵, 무엇이 그리 불만이었는지 대학교 친구들과 잠시 연락을 끊고 어디론가 홀로 이유 없이 떠나고 싶었다. 아마도 나중에 핸드폰을 켜면 나를 걱정하는 문자와 전화들이 와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아마도 지방에서 말 그대로 상경하며 겪게 된 커다란 세계, 지리적으로든 심적으로든 겪어가면서 느꼈던 변화들로 인해 그랬던 것 같다. 이유 없이 도망치듯이 찾아간 월드컵 공원에선 이루마의 어떤 피아노 노래가 흘러나왔다. 한적한 아름다운 풍경들, 여유로운 사람들, 이유 없는 불안 가운데 무작정 걷고 있는 나, 그러한 모습들 가운데 잔잔한 피아노 노래를 들으며 무심코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모든 것이 충만해서 눈물이 나왔다. 알 수 없는 눈물을 닦고 학교로 돌아오는 길, 핸드폰엔 딱히 나를 걱정했던 사람이 없음을 알며 너털웃음을 지으며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가끔 알 수 없는 어떤 충만한 순간들이 스쳐 지나갈 땐 우리는 눈물을 흘린다. 호숫가에 비친, 햇살의 작은 조각들을 보며 알 수 없는 눈물이 가득히 나오기도 한다. 아주 나중에서야 나는 그 조각들을 통해 나온 알 수 없는 눈물의 의미가 이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이러한 작은 순간들을 통해서만이 인생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서 무기력한 슬픔이 찾아온다.
그러한 나른하고 무기력한 순간들로 가득 찬 영화. 탄광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위해 주인공 최민식은 오케스트라 아이들과 함께 비 오는 날 연주를 한다. 비에 맞으며 연주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엔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혼을 앞둔 최민식의 옛 애인은 최민식이 일하는 학교를 찾아와 멀리서 지켜본다. 옛사랑을 찾아온 길, 그 집 주변까지 와선 결국 최민식을 만나지 않고 돌아가는 먼 길, 영화는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고단하고, 무기력하고 잔잔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영화의 대부분 장면에서 먹먹함이 계속 느껴진다.
곱게 다듬어지지 않은 굳은살들만이 오랜 시간 기울인 노력과 삶에 대한 의미를 말해준다. 모든 예술을 하는 이들, 모든 노동을 감내하는 이들은 기어코 굳은살이 생기고만 만다. 아름답게 관리된 신체들만이 아름다울 것처럼 말하는 세상과 다르게, 아름다움이란 것은 이런 슬픔을 간직한 굳은살들만이 말할 수 있다. 극 중 최민식은 오랜 친구와 함께 바닷가에서 술을 마시며, 결혼 생활에 지친 친구에게 너희도 이제 굳은살이 생겼구나 하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어느 날 굳은살을 바라본다. 이렇게나 많이 생길지 몰랐던(생기지 않길 바랐던) 굳은 살만이 슬픔에 담긴 아름다움의 이유를 말해주는구나. 가끔 굳은살을 보며 지난 시간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인생은 그러한 시간들을 떠올리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눈물과 회환으로 어느새 나도 모르게 쌓인 굳은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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