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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정 Jun 28. 2024

열쇠의 냄새

방금 막 있었던 일인데 이게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아서 브런치를 켰다. 은행을 갔다가 더운 나를 식혀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들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우리 집에 가는 길은 세 갈레인데 나는 사람이 없는 골목길을 선호한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를 바 없이 혼자 털레털레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담 너머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는 내 앞의 아주머니께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는 그 분께 열쇠를 안 가지고 나왔다며 대문을 열어달라고 하셨고, 그 분은 “저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요~”라며 곧장 문을 열어주셨다.


초등학생 시절 주택 2층에 살던 생각이 났다. 늘 대문 열쇠를 들고 다니던 그 때. 혹시라도 열쇠를 놓고 오면 1층 엄마 친구집에 초인종을 누르거나 집앞에서 누구든 오길 기다리곤 했다. 그러면서 동네를 빙빙 돌기도 하고 문앞에 앉아 돌멩이나 가지고 놀던 그때의 냄새가 밀려와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리고 그 순간 오토바이의 달달거리는 소리와 함께 우체국 기사님이 한집 대문 앞에서 우편물 주인을 크게 부르셨다. “00씨~?”라며. 도어락도 아니고 심지어 초인종도 아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건 너무 오랜만에 봐서 누가 내 몰레카메라를 하는 줄 알았다. 10년 아니 15년은 더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신기하게도 어릴 때 맡았던 동네의 냄새가 나는 듯했다.


집으로 오던 길에 뜻밖의 선물을 받아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에어컨 앞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오늘만큼은 선풍기 앞에서 하드를 먹던 내가 된 것만 같았다. 돌이킬 수 없는 풍경과 돌아갈 수 없는 내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몽글몽글하다.


그런 기분에 오랜만에 낮에 누워 티비를 켰다. 오늘은 무슨 날인 걸까. 마침 슬램덩크가 한다. 내가 트루먼쇼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다. 오늘을 한 동안 곱씹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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