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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Jul 14. 2022

사랑은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5)

손이 되고 싶다

전남자친구와 헤어진 지 이틀 차 정도 됐을 때다. 정말 많이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걸 스스로가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필라테스가 끝나고 계단 올라가는 길에 울고, 육교를 건너다 울고, 집에 돌아와서 침대를 부여잡고 울었다. 난생 처음 보는 주인의 행태에 우리 집 강아지들이 어쩔 줄 몰라하며 내 앞에서 온몸을 흔들어댔다. 그렇게 다 울고 나니 마음이 진정이 됐다, 고 믿었다. 문제는 밤이었다.





12시가 넘어가는데 머릿속엔 멈추지 않는 영사기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주로 헤어지던 날의 기억이었다. 오토바이에 앉아 담배를 피던 그의 뒷모습을 보며 다가서기 망설이던 나의 감정까지도.





결국 방에 혼자 있다가 거실로 스윽 나왔다. 그리고 베개를 든 채 말했다. 





- 엄마 오늘 같이 자도 돼?





내 나이 스물일곱. 다 큰 성인이지만 어른일 수 없는 날이었다. 엄마가 말없이 옆자리를 내줬다. 들고 온 베개를 바닥에 두고 몸을 눕혔다. 잠이 들락말락한 순간이었다. 기도하듯 꽉 쥐고 있던 내 손등 위로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엄마의 손이었다. 눈물이 울컥 날 뻔했다. 나는 조용히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불행한 혹은 안 좋은 상황은 심적으로 너무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나를 지탱하는 모든 것들이 밖으로, 저 멀리로 분해되어 사라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때 더욱 내게 절대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은 내가 알아차릴 수 있는 신호를 보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넌…. 우리 엄마는 감성적인 사람이기보다 이성적인 사람에 가깝다. 어떤 말보다 내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엄마의 따뜻함에 어렴풋한 믿음이 생겼다. 이 순간을 잘 지나칠 수 있다는 믿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넌, 잘 해낼 거야 말하는 엄마의 암시적인 눈빛.




그 온화함 속에 떠오른 생각 하나.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누군가가 연약한 살을 보이는 건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므로, 나 역시 네가 이 상황을 잘 넘어갈 수 있다고 따스히 보듬어주는 손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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