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차 Jul 17. 2022

사랑은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6)

사랑의 시초 1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다시'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예전에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려면 먼저 자신부터 알아야 한다는, 그 당시 작법 수업을 알려주시던 선생님의 조언이었다. 그 말을 듣고 생애 처음으로 상담사 선생님을 뵈었다. 




당시에 나는 매우 불안정한 사람이었다. 스스로는 내가 불안정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었다 판단이 섰던 일이 있었다. 엄마와의 일이었다.






우리집은 어릴 적 엄마와 아빠의 사이가 영원히 갈라질 뻔했다. 아빠도 엄마도 밖에만 있었다. 그럼 집에는 누가 있었을까. 밤마다 자는 척 부모님을 기다리던 내가 있었다. 아이를 오랜 시간 혼자 둘 수 없는 이유로, 엄마는 나를 외할머니에게 맡겼다. 외할머니는 투박한 정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가 있는 내게 조금만 먹으라 하시다가도 뼈해장국의 뼈를 더 얹어주시던 사랑스러운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명절에 외할머니댁에 오면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나를 두고 가지 말라며, 데리고 가라며 밤마다 그렇게 울었단다. 지금이야 기억이 나지 않는 장면이긴 해도 얘기를 들을 때 코끝이 찡해지는 걸 보니 감정은 아직 증발되지 않은 것 같다. 




여타 이런 이유로 나는 어릴 적부터 결핍과 버려짐에 예민해졌다. 이 예민함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고 속에서 천천히 자리를 잡아 자라났다. 








상담을 결심한 이유, 엄마. 그러니까 그날은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싸운 날이었다. 엄마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고 나에게 집을 나가겠다 말했다. 스위치가 눌렸다.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불안이 한순간에 켜졌다. 엄마는 정말로 나가는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왜 아무것도 없는 거지. 나는 뭐지. 나는 아무것도 아닌가? 엄마는 이미 집을 나간 후였다. 나는 스스로를 달랬다. 보통의 싸움이다. 엄마는 다시 돌아올 거다. 확신이 없을 땐 암시라도 해야 한다. 




10시. 엄마가 보통 집에 돌아오는 시각. 바깥 복도에서 들리는 걸음소리 없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 없음, 고로 집엔 엄마는 없음. 나는 뜬눈으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심장소리가 귀까지 들렸다. 눈물이 범람했다. 이불을 꽉 쥐었으나 눈물을 멈출 제어장치가 되진 못했다. 이대로 엄마는 들어오지 않는 걸까. 



새벽 2시. 현관문이 열렸다. 동시에 나의 불안감이 사라졌다. 엄마가 돌아왔으니까. 





이 일을 겪었을 때가 스무살 초반이었다. 나는 이후에 내 안의 무언가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잠깐의 말다툼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땅으로 꺼질 것 같은 불안감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심한 무기력을 느끼는가? 보통의 사고는 아니란 판단이 들었다. 여러 생각 끝에 '상담을 받아보자'란 결론이 났다.





선생님은 내 얘기를 무척 잘 들어주셨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말씀을 하셨다. 




- 왜 박차씨는 엄마를 지켜줘야 하는 존재로 생각할까요?





작가의 이전글 사랑은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