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차 Feb 02. 2023

감정 전당포(8)

부끄럼, 부러움, 부족함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한 때 내가 좋아하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첫 문장이다. 부끄럼 많은 생애란 무엇일까. 부끄럼은 언제 느끼는 감정일까. 내가 느끼는 부끄럼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곰곰이 감정을 되짚어 보니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홀로 있을 땐 알아차릴 수 없는 영역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 참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작가를 꿈꾸면서도 고전을 읽지 않고, 영상을 한다면서 영화를 많이 보지 않고, 아직까지 뭐 하나 뚜렷하게 낸 작품도 없으며, 제대로 돈을 모으지도 않았으며, 쓰는 데에 거리낌 없는 내가 떠올랐다. 부끄러움은 부러움으로 탈바꿈해 나보다 뛰어난 구석이 있는 사람을 보면 닮고 싶단 생각이 뒤따랐다. 그리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부분이 없는 나를 탓하곤 했다. 그게 내 순리였다.



부끄럼을 감각한다는 건, 타인에겐 있지만 내겐 없는 영역을 감지하는 일이다. 그래서 괴롭다. 노력해서 없는 걸 있게 만들 수도 있지만, 노력한다고 획득할 수 없는 영역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반복하면 결국 마주하는 건 나의 부족함이었다. 부족함도 부러움도 부끄럼도 숨기고자 하니 솔직함은 조금씩 멀어져 갔다. 내게 솔직해지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데 말이다. 



숨지 않으려면 아파도 자꾸만 보는 방법밖엔 없었다. 말을 밖으로 꺼냄으로써 스스로에게도 말해주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런 연유로 일을 하고 있지만 알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돈이 없다고도 말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부끄럽다 여기지 않고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알바를 나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고 있는 거였구나. 부끄럼이 질투로 변해 타인에게 악독한 사람이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 거구나. 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구나. 이 사유들이 나를 부끄럽지 않은 인간으로 만들어주었다.



'통증은 상처의 살아있는 감정이다.'


인간 실격에 나온 문구처럼 꼿꼿하게 찍어 누르는 중력과 같은 무게와 생의 책임감이 나를 누르긴 하지만서도, 이번 생애를 포기하고 싶지 않다. 포기할 이유가 없다. 살아갈 이유는 많아도.

작가의 이전글 감정 전당포(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