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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Jun 25. 2023

감정 전당포(10)

꿈에 나타나주오

예상치 못한 인물이 꿈에 나타났다. 별 내용은 없었다. 다만, 마주 앉아 음식을 먹던 그 얼굴이 예쁜 웃음을 지을 때 나 또한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장소인지, 어떤 상황인지 기억나는 건 없었다. 빛처럼 번지던 웃음밖엔.




꿈은 선택이 불가능하다. 조상신이 로또 번호를 점지해 주거나, 한 번은 골탕 먹이고 싶은 사람에게 사이다 발언을 날리거나, 보고 싶은 사람이 내 옆얼굴을 가만 만져주거나 하는 일은 바란다고 나타나지 않는다. 횡단보도 앞에서 운 좋게 신호등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듯 찾아온다. 악몽이라면 걸음을 멈출 빨간빛일 테다.



그렇게 누군가의 꿈을 꾸고 나니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여태 단 한 번도 내 꿈에 나타난 적이 없었다. 여름만 되면 생각나는 사람. 자기 전에 매일 같이 수포가 올라온 내 손에 약을 발라주던 사람. 주말만 되면 함께 목욕탕을 가던 사람. 예쁘다, 예쁘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손녀가 몰래 돼지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가던 걸 모른 척 넘어가준 사람. 



누군가를 기억할 때면, 누군가의 농축된 역사가 기억나지 않는다. 수많은 만남 속 내 마음에 조용히 자리 잡은 장면으로 누군가를 회고할 뿐이다. 그러니 꿈은, 다시 볼 수 없는 사람과 새로 써 내려가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거기엔 내 의도는 없다. 보고 싶은 누군가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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