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고 싶었어
헤어졌다. 지쳤다는 말을 먼저 꺼낸 건 나였다. 월요일에 얼굴 보고 말하자, 그러자 생각했던 게 터져 나왔다. 낮에는 그가, 저녁엔 내가 일이 있어 통화는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이뤄졌다. 여러 얘기가 오고 갔다.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얘기를 꺼낸 건 난데 이게 정답인가, 싶은 혼란스러움이 떠올랐다.
내일까지 생각해 보겠다는 그의 말에 머뭇거리다 답했다.
- X야, 내일까지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아.
- ...
-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집 앞에 서 있던 나는 몇 번이나 안을 왔다 갔다 했다. 현관 센서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그동안 고마웠어. 너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전화를 끊었다. 집으로 들어갈 때까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옷방에 들어가 바닥에 쭈그려 앉았을 때, 스멀스멀 눈물이 차올랐다. 나는 알았다. 내일까지 나온 답이 어떤 것이든, 이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그는 상대에게 기대하질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이 내겐 확신을 주었다.
아, 이 사람과는 여기까지가 맞다.
나는 상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 하지만 상대는 나에게 바라는 점이 없다. 나는 불만이 생기면 얘기를 할 거고, 조율을 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것이 가능할까. 조율이란 바라는 점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이번 연애엔 시작 전부터 예견되었던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노력했으나 나와 감정적으로 동화되지 못했다. 그는 얘기를 잘 들어주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그러지 못하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부분은 연애 전에도 예상이 갔던 부분이었다. 다만, 나를 좋아해 주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에 계속해서 나를 억눌렀다. 마음을 온전히 주지 못하는 나에 비해 그는 표현해 줬으니까.
노력하면 사랑이 될 줄 알았다. 그런 오만한 생각을 했다.
씻다가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행복해지고 싶었어. 행복해지고 싶었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