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러움
떠도는대로 사는 듯한 느낌을 아는가. 내 방향이 이곳이 맞는지, 어쩌면 저쪽으로 갔어야 정답이 아닐지 싶은 순간들. 때때로 부유한 먼지 같은 느낌이다가도 알바를 가는 길엔 확실한 중력감을 느낀다. 분명 현생을 살고 있긴 한데, 내가 원하는 인생이 이게 맞는진 모르겠다.
대략 1년 6개월의 드라마 보조작가 생활을 청산한 후, 나는 어떠한 후련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무력감이 더 컸다. 내가 꿈꾸는 길이었으므로 끝까지 가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도 하차를 했다. 더이상 나를 소진할 수 없어서가 이유였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찾으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내가 드라마 보조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건, 드라마 세계의 생태와 현직 작가님의 집필 과정이 궁금한 탓이었다. 하지만 작업 환경이 나와 맞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내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었다. 종종 만나는 친구들은 그렇게도 사람이 만나고 싶었냐 물었다. 그럼 나는 고개를 열심히도 주억거렸다. 좋아. 진짜 좋아.
갈망은 채워지지 않으면 원망을 낳는다. 그 원망은 내게로 향했다. 네가 더 잘했어야지. 더 적극적이었어야지. 더 좋은 아이디어를 냈어야지. 자꾸만 엎어지는 대본을 보며 든 생각이었다. 사실상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는데 불구하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자기비판에 결국 쓰러졌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일어설 힘조차 없어서 물기가 흥건한 바닥에 그렇게 엎어져 있었다. 볼에 닿는 물기가 급작스레 몰아친 파도 탓이 아닌 눈물 때문이란 것도 모른 채로.
드라마 보조작가 생활을 그만둔 데엔 후회는 없다. 다만,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혼란스럽다. 내 인생을 미리보기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