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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Feb 12. 2023

[리뷰] 사이코패스(PSYCHO-PASS) 1기

부딪히고 깨져도 스스로의 힘으로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PSYCHO-PASS) 1기


  애니메이션 [사이코패스(PSYCHO-PASS)]는 무려 고등학교 때 추천받은 작품이다. 어디 재미있고 참신한 애니메이션 없냐는 내게 친구가 명작이라며 알려줬다. 다만 잔인해서 취향에 안 맞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던 게 기억난다. 대강의 줄거리를 찾아보니 '사람들의 멘탈 수치를 측정해서 범죄가 발생하기 전 방지하는 시스템'이 주 소재였다. 당시에는 사회 문제를 다루는 작품보다는 단순 재미, 화려함 등의 작품만을 좇던 시기라 소재를 읽고 나서도 큰 관심이 생기지 않아 미뤄두었다. 그러다 최근에 [사이버펑크: 엣지러너]를 보다가 '사이버사이코'라는 단어에 문득 이 작품이 떠올랐다. 지금 보니 어떤 부분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이코'라는 단어와 화려하지만 암울한 세계 배경이 겹쳐 보였던가.


  [사이코패스] 1기는 총 22화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화당 20분으로 영화보다 템포가 빠르다고 해도, 평소에 드라마를 즐겨 보지 않는 내겐 힘든 긴 호흡이었다. 그럼에도 몰입도가 상당하고 재미있어서 틈날 때마다 봤더니 3일 만에 끝났다(내가 평소에 영상 시리즈물을 잘 안 보는 걸 아는 사람들은 아마 놀랄 것이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로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가 있다. 세계관과 트릭까지 무척 흡사한 것과는 별개로 [사이코패스] 쪽이 이러한 미래 시스템이 과연 옳은 것인가, 우리는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고 생각한다. 결말에 대해서는 평이 갈리던데, 생각해 보면 시빌라 시스템을 파괴하고 새로운 체제를 쌓아 올린다는 상상은 통쾌할지는 몰라도 너무 진부하며 비현실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름 나쁘지 않은, 현실적인 결말이다.




  1기의 분량은 총 7-8시간으로 꽤 길지만, 덕분에 새롭고 방대한 이 미래세계를 더욱 꼼꼼히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홀로그램 복장이나 인테리어, 보편화된 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활동하는 아바타들 등 현대에도 머지않아 실현될 기술이 그럴듯한 메커니즘과 함께 등장하는 여러 장면은 미래 기술이 가져올 변화에 관심이 많은 내게 무척 흥미로웠다. '시빌라'라는 중앙 시스템이 통제하는 미래 사회가 현대 사회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간과하지 않은 것도 마음에 든다. 일례로 충격적인 살인 사건이 눈앞에서 발생해도 군중이 인지 자체를 하지 못하는 장면은 시빌라 시스템이 인간에게 '안전'을 제공하는 대신 '스스로 판단할 의지'를 지워버렸음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의 해프닝이라 생각하면 소름 돋지만, 범죄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미래 사회에서는 그것이 오히려 현실적이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알맹이만 화려한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아닌, 미래의 요소들이 하나의 사회에서 종합적으로 어떤 시너지를 내고 어떤 문제를 낳는지 찬찬히 고민해 그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세계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촘촘히 짜인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1화부터 이 시빌라 시스템에 기초한 정신계수 감정이 어딘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아직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이가 공안국에 쫓기기 시작하자 '아무것도 하지 못했는데 잡힐 수 없다'며 돌발 행동을 하는 것부터, 범죄에 휘말려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멘탈이 무너지자 사이코패스 계측치가 순식간에 올라 가해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고 제거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까지. 모두가 만족할 만큼 완벽한 객관적이고 오류 없는 시스템은 허상이란 걸 보여주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빌라 시스템 아래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건 잃어버린 것들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꾸는 위안일 뿐이다. 운동선수라는 꿈을 꿀 기회조차 박탈당한 아카네의 친구 '후나하라 유키'나 시빌라 시스템이 제안하는 안정적인 정신 계수를 유지하기 위해 강박을 겪는 감시관 '기노자 노부치카'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련의 사건을 따라가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한 가지 질문을 곱씹어왔다. 시빌라 시스템을 부숴버리면 미래인들이 겪는 부조리함이 전부 깔끔하게 해결될까? 이러한 고민은 주인공인 '아카네'의 성장과 결을 함께한다. 결국 시빌라 시스템에 대한 진실에 닿게 된 순간 아카네는 자신의 눈을 가리고 있던, 사회 시스템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를 벗어던지게 된다. 이때 시빌라 시스템이 내뱉은 '감정적인 혐오와 이성적인 판단이 양립할 수 있기에 아카네와 우리는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말이 압권이다.


  처음에는 아카네가 저런 말을 듣고도 시스템을 부수지 않는 게 현실에 순응하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이는 단순한 굴복이 아닌 성장을 의미한다. 마키시마가 지적했던 노예의 삶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의지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 것이라면, 결국 아카네와 시스템의 끝은 다를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건 선악의 구분이 아니며, 그걸 스스로 끌어안고 고민하고 짊어지는 것'이라는 대사는 이 작품의 주제를 관통한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좀비처럼 살아가기보다 틀렸더라도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나아가는 삶이 더 고고하다.




  이 명작의 가장 큰 진입장벽은 아마 선정성일 테다. 전개 도중 충격적이고 불쾌한 장면이 여과 없이 나온다.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1화에서부터 충격을 받고 그대로 하차할 수도 있다. 이런 장면은 범죄 행위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생생히 느끼고 이를 통해 시빌라 시스템과 도미네이터의 피상적 의의를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과연 절대로 순화할 수 없는 필수적인 장면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오료 리카코'의 범죄가 쓸데없이 자극적이다. 이와 비슷한 느낌으로는 [한니발]에서 등장한 '엔젤메이커'와 '시체 토템폴' 등이 있는데, 해당 장면도 무척 자극적이었으나 성적인 불쾌감을 주지는 않았다. 구시대적인 여학교의 방침을 비판하려는 목적으로 여학교를 등장시키고 그 안에서 오료 리카코라는 인물을 구상하려던 거라면 다른 방식을 찾았어야 했다. 그런 비판적인 목적보다는 오료의 오리지널과 아류에 대한 마키시마의 생각과 그의 '의지에 대한 집착'을 그려내기 위해 선택했을 것 같지만.


  작품 내 범죄와 관련해서 1기의 배후라고 할 수 있는 '마키시마 쇼고'의 캐릭터성 또한 살짝 아쉽다. 시빌라 시스템에 통제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지 없는 삶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었다면 [데스노트] 초반의 '야가미 라이토'와 같은 느낌의 이상추구적 범죄자로 밀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사람들을 계몽한다기보다는 판결하고자 하는 성정이 선 없는 잔인함과 맞물리니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공감하기에는 찝찝하고, 비판하기에는 아쉬운 그런 인물이.




  [사이코패스] 1기의 등장인물들은 전부 제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입체적인 캐릭터다. 세계가 살아 움직이는 만큼 캐릭터들의 배경이나 성격, 그리고 과거도 인위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러워 더 재미있었다. 사람은 이렇게나 다양할 수 있고 모든 선택이 개인의 의지 없이 결정되는 시빌라 시스템 안에서조차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그 모두의 의지를 통제할 수 있을까. 그건 신의 기만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다.


  가까운 미래에 시빌라 시스템 같은 체제가 등장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꼭 사람의 뇌를 기반으로 한 제어 시스템은 아니어도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삶을 예측해 통제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려는 움직임은 충분히 나올 법한 의견이다. 어쩌면, 가지각색의 평가 지표에 휘둘리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또한 정도만 다를 뿐 시빌라 시스템 산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느낀 바를 실천해야 하는 순간도 어느 미래의 시점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지 않을까? 여기 이곳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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