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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Feb 24. 2023

[리뷰] 러브, 데스 + 로봇 시즌3

다채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기차

넷플릭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3의 '히바로(JIBARO)'


  예전에 한참 영화 도장 깨기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내가 영화 리스트를 어떻게 채웠는지 기억을 되살려 보면, 내로라하는 고전 명작들이나 평이 좋은 작품들 위주로 골랐더랬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했고 평가도 성공적인 작품은 생각보다 까다로운 내 취향과도 맞을 확률이 높아 그럭저럭 즐길 만했고 개중에 인생 영화도 몇 작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평단의 선택을 받은 작품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삶의 모든 부분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원했다면, 실패 속에 미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지금은 선택의 순간 마주하는 스릴이 기껍다. 그렇게 새로운 작품의 바다를 즐겁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러브, 데스 + 로봇] 시즌 3은 그런 탐색의 첫머리에서 발견했다. 제목을 보자마자 조예은 작가의 작품인 [칵테일, 러브, 좀비]가 떠올라서 더욱 눈길이 갔다([칵테일, 러브, 좀비]는 가볍게 읽을 만한 SF 단편집 추천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거론될 만큼 인기가 많은 작품이다). 총 9개의 옴니버스식 애니메이션 영화인데 한 편당 러닝타임이 10분에서 20분 사이로 무척 짧아 가볍게 즐기기 좋았다. 각 영상은 사랑과 죽음, 그리고 로봇이라는 큰 세 가지 주제만 공유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개성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어떤 작품은 압도적인 시각 효과를 자랑하고 어떤 작품은 빠른 템포 속에서 무한한 재미를 발산한다. 앉은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다 봤으니 이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을 왜 추천하는지 입 아프게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넷플릭스의 시즌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왠지 모르게 부담을 느낀다. 한 번 보기 시작한 드라마니 끝까지 봐야 할 것 같아 중간에 지루해져도 드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한 작품이니 일단 의리로라도 결말까지 끝까지 달려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넷플릭스에서 단편 영화가 아니면 작품을 감상하기 꺼리는 경향이 있는데, [러브, 데스 + 로봇]은 각 영상의 러닝타임이 짧고 서로 이어지는 작품이 아니라는 게 무척 좋았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끊길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볼 수 있고, 서로 연결된 서사가 아니기 때문에 긴 떡밥이나 설정을 기억하며 봐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이런 옴니버스식 구성이 또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각기 다른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아기자기한 데포르메부터 실사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비주얼, 그리고 2D와 3D가 섞여서 내는 오묘한 분위기까지 각 작품은 작품의 방향에 따라 넓은 범위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넘나든다. '나이트 오브 미니 데드'의 미니어처 기법은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기에 신기했다. '스웜'과 '아치형 홀에 파묻힌 무언가'는 실사 영화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자연스러운 그래픽을 보여주어 놀라웠다. 비주얼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느낀 건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과 '히바로'였는데, 전자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작풍을 통해 가상 세계에서의 영적인 체험을 기묘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했다면, 후자는 현실 세계를 모방한 비주얼을 사용해 현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기괴함을 연출하여 엄청난 몰입을 선사했다.


  각 작품은 독특한 소재를 잘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시작과 끝의 완성도 또한 높다. 특히 '히바로'와 '어긋난 항해'가 그러하다. '히바로'는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작품이 꽉 차 있어 감상하는 내내 감각이 쉬지 않고 내달린 듯한 느낌이 강하다. 누가 죽임을 당하고 누가 죽임을 자행하는지가 계속해서 뒤집히며 그 순간순간의 폭발을 화면과 음향에 잘 담아냈다. '어긋난 항해'는 그런 화려한 연출 대신 촘촘하게 짜인 캐릭터와 서사만으로 작품에 훅 빠져들게 한다. 괴물을 싣고 달리는 아슬아슬한 배 위에서 우리는 속을 알 수 없는 갑판장을 지켜보며 이 어긋난 항해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계속해서 숨을 졸이게 된다.




  아무래도 '죽음'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저 선정적이기만 한 작품도 있을 수밖에 없다. 모든 이야기들이 어떠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단순히 눈이 즐거울 목적으로 만든 작품도 그 자체의 의의를 가지고 있다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잔인하거나 공포스러운 장면만을 나열한 영상은 좋아하지 않는 내게 '아치형 홀에 파묻힌 무언가'는 감상하기 힘든 영상이었다. 끔찍하게 생긴 괴생명체와 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피를 흩뿌리는 사람들, 그리고 괴물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스스로의 몸을 잘라 낸 군인까지, SF라기보다는 공포 판타지 게임 트레일러를 보는 듯했다.


  반면 의미 있는 주제를 가지고 있으나 중간중간 표현이 잔인해서 보기 힘든 작품도 있었다. '메이슨의 쥐'는 꽤나 뻔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재치 있는 연출이 많아 즐길 만하다. 살아남기 위해 진화한 쥐가 석궁과 검을 달고 인간에게 대항한다는 것과 고작 '쥐'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시스템이 벽면 하나를 전부 차지하는 최첨단 기계라는 등, 별 것 아닌 것들을 과장스럽게 그려내 웃긴 장면이 꽤 많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 쥐가 피를 튀기며 죽는 장면을 우스꽝스러운 브금과 함께 클로즈업하며 들이미는데, 이런 건 전혀 재미있지 않고 잔인할 뿐이다. 현실에서도 일방적으로 사람들에게 죽는 위치인 동물들의 죽음을 개그로 승화할 순 없다. 개그와 웃음의 화살은 언제나 약한 자가 아닌 힘 있는 자를 향해야 하기에.




  [러브, 데스 + 로봇]은 시즌이 3개나 있다. 각양각색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스무 편이나 더 감상할 수 있어 다행이다. 단지 사랑과 죽음, 그리고 로봇이라는 키워드만 제시했는데도 이렇게 다양한 발상이 피어오를 수 있다는 건 역시 사람의 창의력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생각한다. 아무리 많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사람만의 영역이라 여겨지던 상상의 부문에 손과 발을 뻗는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빼앗길까 겁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설에서 한 작가의 단편모음집을 감상하는 것과 여러 작가가 모여 만든 앤솔러지를 감상하는 게 결이 다른 것처럼, [러브, 데스 + 로봇]도 예측할 수 없는 다양성 덕분에 즐거웠다.


  어떤 형태의 콘텐츠이든 간에, 단편이란 것은 짧은 시간 내에 서사와 감정을 압축시켜 전달해야 한다. 긴 시간을 공들여 세계관을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울뿐더러 짧게 등장하는 캐릭터들에 사람들이 정을 붙이고 몰입하게 만드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러브, 데스 + 로봇]에 등장하는 많은 작품이 그 어려움을 딛고 관중을 압도하는 캐릭터('어긋난 항해')를 보여주거나 감정을 집약시켜 눈과 귀로 느낄 수 있는 강렬한 파괴력을 담아냈다('히바로'). 또는 목성의 위성인 이오를 새로운 시각 - 기계와 기능 - 으로 바라보게 한 신비로운 작품도 있다('강렬한 기계의 진동을'). 이들을 보며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아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고, 뒤이어 나도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잊고 있던 열망이 튀어나왔다. 내 안에서 오래 묵혀 둔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려는 이 박동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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