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 페트라에서 사해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유럽과 남미 여행을 가면서 뜬금없이 요르단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신기한 루트였지만 친구는 완고했다. 요르단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페트라가 있고 영화 [듄]을 촬영했다는 붉은 사막 와디럼도 있으며, 무엇보다 발만 담가도 몸이 둥둥 뜨는 사해도 있다고. 중동 지역이라 막연히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나도 요르단만큼은 치안이 좋다는 글을 읽고는 설득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는 5박 6일 동안의 요르단 여행으로 4개월의 여정을 시작했다.
요르단은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기 무척 힘든 나라이다. 중동 지역 중 유일하게 유전이 없는 나라라 관광업으로 먹고살지만, 관광 명소가 사방팔방 흩어져 있을 뿐 아니라 버스나 택시 등의 교통수단을 이용하려 하면 무지한 관광객이랍시고 덤터기를 쓰는 경우가 많다. 뒤에서 털어가는 것만 없을 뿐이지 앞에서 눈 뜨고 코 베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 편하게 렌터카를 빌려 돌아다니기로 했다.
문제는 내가 운전 경력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2022년 초에 운전면허를 겨우 땄고 그동안 간간히 운전 연습을 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숙련된 운전자를 조수석에 태우지 않는 이상은 멀리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요르단 시내 운전은 전부 친구가 맡기로 하고, 나는 400여 킬로미터를 쭉 달려야 하는 와디럼 - 페트라 구간이나 페트라 - 사해 구간의 뻥 뚫린 고속도로에 한해, 필요한 경우 교대를 하기로 했다.
요르단 암만 공항에서 내려 렌터카 업체로 곧바로 이동해 차를 빌렸다. 많은 걸 바라지는 않았으나 차는 생각보다 볼품없었다. 창문에는 햇빛을 가려주는 시트가 붙어있지 않아 쨍한 적도의 햇빛을 그대로 쬐어야 했다. 차체 바닥도 낮아서 울퉁불퉁한 도로의 굴곡이 엉덩이로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주차를 하거나 차를 뺄 때 도움이 되는 후면 카메라와 경고음 시스템도 없어서 참 애를 먹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길에 차가 없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암만 시내에 가까워지자 혼돈 그 자체인 도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분명 한국에서 차를 몰 때는 다들 선이라는 걸 지키던데, 우리가 달리는 도로에는 눈에 띄는 선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진회색의 덩어리 진 아스팔트 도로 위를 제각기 알아서 굴러가고 있었다. 4차선이었던 도로가 순식간에 6차선이 되었다가 5차선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암만의 도로는 무법자들이 점거한 느낌이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나니 더욱더 운전대를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순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법을 지키지 않으니 오히려 규칙을 자주 까먹는 초보 운전자에게는 더 좋은 환경이 아닐까?' 그 순간, 초록불이 되기도 전에 클락션을 미친 듯이 울려대는 자동차 무리를 보았다. 내가 이 야생의 도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과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행히 이제 막 첫 여행을 시작한 우리는 팔팔하다 못해 에너지가 넘쳤고, 친구는 이런 엉망진창인 도로마저 즐기고 있었다.
친구가 지쳐 나가떨어진 건 연속 3일을 내리 운전하고 나서였다. 우리는 와디럼에서 새로운 동행을 만나 사해로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야 창밖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사막 풍경을 감상하며 즐거워했지만,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살인적인 햇빛과 함께 몇 시간이고 계속 이어지는 운전은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내가 대신 운전대를 잡을 시간이 온 것이다.
다행히 사해로 가는 고속도로는 양방향 1차선이었다. 두 눈 부릅뜨고 앞에서 오는 차만 조심하면 되는, 그런 간단한 길인 셈이다. 하지만 타지에서, 그것도 내가 몰아본 적 없는 종류의 구식 자동차를 운전하려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두려움과 기대감이 동시에 몰려들었다. 느릿느릿 운전석으로 가 앉아 반사적으로 안전벨트를 매며 심호흡을 했다. 한국의 고속도로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겁 없이 달리던 운전 기억을 힘껏 끌어왔다.
액셀을 밟고 고철이 부르릉거리며 겨우 출발하기 시작했을 때는 숨이 멈추는 줄 알았다. 운전의 기본을 계속해서 되뇌며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황을 잘 제어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그렇게 여유가 생기고 나니 한국에서 막 운전면허를 딴 내가 요르단의 고속도로에서 차를 몰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이 났다. 창문은 닫혀 있었지만 귀를 가르는 시원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중간에 잠깐 작은 마을을 지나갈 일이 생겨 근처 구멍가게에 들렀다. 나는 여전히 차를 멈췄다가 가동할 때마다 겁을 먹는 초보 운전자였다. 그때 간식과 음료를 사서 돌아온 동행이 내 어깨를 툭 치며 시원한 목소리로 '운전 잘하시던데요? 덕분에 편안해서 깜빡 자버렸지 뭐예요.' 하며 호쾌하게 웃었다. 그 말이 겉치레였는지 혹은 진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선의의 거짓말이든 진심 어린 격려든, 그 순간 내게는 엄청난 힘이 되었다.
긴 시간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다 보니, 운전할 수 있는 능력이란 강력한 힘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는 곳들을, 차를 운전한다면 쉽게 갈 수 있다. 바퀴란 내 발에 달린 날개와도 같아서 내가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100여 킬로미터 정도 되는 요르단의 도로를 달리며 생각했다. 지금처럼 두려워만 말고 열심히 운전을 연습해서 어디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