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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n 15. 2023

바다는 무섭지만 하늘은 안 무서워서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스카이다이빙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스카이다이빙 경비행기


  어렸을 적부터 이것저것 상상하기를 좋아했던 내게는 막연하지만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새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기'였으므로, 사실상 실현할 수 없는 공상이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즐길거리를 찾던 도중 스카이다이빙이 저렴하다는 후기를 발견했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까마득한 상공에서 낙하산 하나에만 의지해 떨어진다니, 거센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공중에 떠 있는 동안 얼마나 짜릿할까 상상만 해도 두근거렸다. 그렇게 남미 여행의 피날레는 스카이다이빙으로 결정되었다.




  검색을 하다 보면 스카이다이빙으로 유명한 포인트가 몇 군데 나온다. 유럽에서는 체코가 가장 저렴하기로 유명해서, 유럽 여행을 할 때 만난 동행은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체코로 떠난다고도 했다. 남미에서는 페루 리마에서의 패러글라이딩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스카이다이빙이 인기 많다. 아르헨티나의 스카이다이빙 비용은 2023년 초 올랐음에도 아직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저렴한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사진 및 영상 촬영을 제외하고 스카이다이빙만 즐기는 가장 심플한 활동은 한화로 약 24만 원 정도다. 남미까지 와서 안 하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금액이다.


  스쿠버다이빙에서는 물 만난 고기처럼 돌아다니던 친구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바람에 스카이다이빙을 할지 말지 엄청나게 고민했다. 나는 생각보다 아무런 걱정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바다보다 육지를, 땅보다 하늘을 더 좋아했기에 바닷속에서 숨을 못 쉬어 죽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힘들었으나 공중에서 낙하하는 건 큰 불안이 없었다(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성향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친구는 스카이다이빙 예약 전날까지 갈팡질팡하다, 예약 마감 1시간 전 큰 마음먹고 함께 도전해 보기로 했다.




  투어 당일 아침,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픽업 장소에서 차를 타고 스카이다이빙 장소로 이동했다. 부에노스 도심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광활한 평지로 이동하는 동안 모자란 잠을 보충하며 긴장을 풀었다. 스카이다이빙 장소에는 경비행기가 여러 대 놓여 있었고, 우리와 함께할 베네수엘라 친구 한 명도 있었다. 바리바리 싸들고 간 현금으로 비용을 내고, 익스트림 스포츠가 으레 그렇듯 신체포기각서 비슷한 서류에도 싸인을 했다. 장비를 꼼꼼히 착용하고 나서 짧은 교육 영상을 보며 차례를 기다리는데,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첫 번째 순서라 차례는 금방 왔다. 좁은 경비행기에 나와 친구, 그리고 조종사와 교육자까지 다섯 명이 함께 타니 안 그래도 조그마한 내부가 꽉 찼다. 불편하게 쪼그려 앉아 경비행기 창문으로 바깥을 내려다보았다. 비행기가 뜰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고,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고도를 올라갔음에도 경비행기 내부는 너무 고요해서 문을 열기 전까지는 우리가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를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서 적정 고도에 도달해 뛰어내릴 준비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미쳤다는 외침을 내뱉었다.

 

  갑작스레 문이 열리고 발아래로 까마득히 내려다 보이는 들판이 눈에 들어오자 갑자기 현실이 훅 다가왔다. 바깥에서 들리는 매서운 바람 소리가 귀를 때리자 여유롭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련한 교육자들은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열린 문 아래로 다리를 내리고 카운트를 세자마자 순식간에 공중으로 떨어졌다. 나보다 먼저 떨어진 친구가 다리를 바둥거리며 모습이 보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떨어지는 순간의 풍경을 제대로 보고 싶어 반사적으로라도 눈을 감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동시에 고통스러웠다. 이 엄청난 가속도를 언제까지 버텨야 하나, 더 이상 못 버티겠다 생각할 즈음 낙하산을 펼쳐 정말 다행이었다! 다행히 낙하산에 매달려 광활한 하늘을 천천히 날아 떨어지는 과정은 즐거웠다. 내려다보는 곳에 점점이 박힌 작은 집들과 드넓은 평원을 감상하며 교육자에게 연신 엄지 척을 날렸다. 내가 하늘을 날고 있다 - 사실은 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 는 감각이 기분 좋았다.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자유로운 느낌. 그동안 이런 해방감을 원했다는 것을 막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스카이다이빙은 너무나도 빨리 끝났다. 내려와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아 얼떨떨했다. 해냈다는 것이 뿌듯했지만 또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첫 순간의 낙하가 주는 울렁거림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울렁거림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잊었을 즈음, 다시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어딘가로 떠나지 않을까 싶다. 하늘을 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는 잊히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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