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우유니의 소금 사막
어렸을 때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에서 새파란 하늘이 그대로 투영된 하얀 바다가 나왔다. 그 아름다운 풍경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끌렸다. 왼쪽 상단에 작게 나와 있는 문장을 읽으니 바다가 아니라 소금으로 이루어진 사막이라고 해서 놀랐다. 파아란 하늘에 몽실몽실 떠 있는 하얀 구름 덩어리들이 바닥에 그대로 비치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저 풍경 속에 내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상상이 한동안 우유니라는 이름을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남미 여행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도 다름 아닌 우유니였다. 남미라는 대륙에는 생각보다 많은 나라가 있고, 세계 7대 불가사의인 공중 도시 마추픽추와 광활한 자연이 유명한 국립공원 파타고니아가 있다는 것도 전부 여행 정보를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지만, 볼리비아라는 나라에 우유니라는 소금사막이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툭 치면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았다. 그만큼 우유니의 소금사막은 오랫동안 나의 버킷리스트이자 꿈이었다. 친구와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나는 우유니 사막만 가면 돼.'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을 만큼 그 사막 하나만 바라보고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대표적인 남미 여행 루트라 할 수 있는 반시계 방향 루트는 콜롬비아에서부터 시작해서 에콰도르와 페루를 거쳐 볼리비아를 간다. 여행이 막 무르익을 즈음 우유니 사막을 보러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신없이 여행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우유니 사막을 잊은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뜬 나를 발견했다. 분명 우유니 사막만을 바라보고 온 건데도 남미 여러 나라의 각기 다른 분위기와 매력에 푹 빠져들었고, 시간이 갈수록 우유니 사막에 대한 기대감이 흐려졌다.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우유니 사막은 오랫동안 내 버킷리스트 1순위였던 만큼 의미하는 바가 컸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모습에 내가 상상한 것들이 덧붙어 기대가 무럭무럭 부풀고 있었으니, 실제 우유니 사막의 풍경을 마주했을 때 상상과 다르다면 큰 실망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 우유니 사막에만 치우쳐 있던 관심이 여기저기 분산된 덕에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었다. 그래도 오래 열병을 앓아서 그런지, 볼리비아 우유니에 도착해 호스텔에 짐을 풀고 투어사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 드디어 소금사막을 내 두 눈으로 볼 수 있으리란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유니에는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3대 투어사가 있는데, 우리는 셋 중 어디도 아닌 작은 투어사를 선택했다. 대형 투어사가 최근 평이 안 좋기도 했고, 직전에 페루에서 만난 동행이 작은 규모의 잘 알려지지 않은 투어사에 사진을 잘 찍어주는 가이드가 있다고 귀띔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유니는 소금사막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이라 투어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할 것이 없어, 남는 시간 동안 직접 발품을 팔며 돌아다녔다. 결국 동행의 추천대로, 대응이 친절하고 설명이 가장 진솔했던 아리엘의 투어로 결정했다.
우유니 투어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선셋과 스타라이트 투어다. 선셋 투어라 하지만 해가 지기 전에 소금사막을 밟기 때문에 청명한 푸른빛 사막을 볼 시간도 충분하고, 해가 진 이후 하늘을 수놓은 별까지 덤으로 볼 수 있다. 스타라이트 투어는 일몰부터 늦은 밤까지 사막에 머무르는데, 추위만 견딜 수 있다면 아름다운 천구를 오래도록 감상할 수 있어 좋다. 달이 없거나 작은 시기라면 운이 좋게 선명한 은하수를 볼 수도 있고.
우유니 사막 초입에는 메마른 소금 바닥을 내리 이동하지만, 어느 순간 바퀴에 물이 찰박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창문을 내다보면 바깥은 온통 맑은 물웅덩이다. 우리는 사막의 건기 막바지에 갔기 때문에 물이 고인 곳을 찾아가야 했는데, 숙련된 가이드들은 문제없이 길을 잘 찾아가니 든든했다. 고산 지대라 평지에서보다도 숨이 찼는데, 투어를 함께 한 사람 모두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듯 잘만 뛰어다녔다. 광활하고 새하얀 사막 위에 떠 있는 새파란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환호성을 지르며 겅중겅중 돌아다니느라 바빴다.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거울을 마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눈이 시리게 화려한 석양이 지고 나서 순식간에 밤이 내렸다. 여태껏 보아 온 별보다도 많은 수의 별이 하늘에 나타났다. 나는 예전부터 천문대에 가서 원형 돔의 플라네타리움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우유니 사막은 그 자체로 거대한 암실이었다. 별이 물웅덩이에 투영되니 별무리가 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끊김 없이 아득히 이어진 환상적인 그림이 탄생했다. 친구가 탄성을 지르는 소리에 옆을 보니 선명한 은하수가 상공에서부터 지평선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우유니 사막의 밤은 미칠 듯이 춥다. 장화 하나만 신은 채로 물웅덩이에 발을 넣고 있으면 뼛속까지 올라오는 냉기를 느낄 수 있다. 이를 대비해 양말을 네 겹이나 신고 상하의도 세 겹이나 입었는데도, 바깥에 있는 동안 발의 감각이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풍경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다시 차에 후다닥 올라타 추위를 떨쳐야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만 살 것 같으면 금세 차 바깥으로 튀어나갔다. 풍경에 집중하고 있으면 발이 아픈 것도 어느 정도는 잊힌다.
우리와 함께한 아리엘은 사진을 정말 잘 찍었다. 차 위에도 올라갈 수 있게 해 주고, 미리 준비해 온 폭죽과 손전등으로 한국인들이 좋아할 만한 인생사진을 찍어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진들보다도 좋았던 건 그 순간 내가 느꼈던 모든 감정이었다. 미칠 듯이 시렸던 발과 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 함께 간 사람들과 나누던 감탄과 찬사를 가끔 곱씹어 보면 그때의 들뜬 감정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내게 돌아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