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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Apr 19. 2023

[리뷰]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우리가 답습하는 차별의 세상에 대하여

3명의 안드로이드 주인공 마커스, 카라, 코너 중 코너


  퀀틱 드림에서 제작해 2018년에 발매한 게임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인터랙티브 무비라는 독특한 장르에 속한다. 인터랙티브 무비는 기존의 일방향적인 콘텐츠 전달 구조를 부수고 수용자와 콘텐츠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제공하여 완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감상자의 선택에 따른 다양한 결말을 맛볼 수 있는 일종의 시뮬레이션이라고 할까. 대표적으로는 넷플릭스의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라는 영화가 있다. 하지만 해당 영화가 단순히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일차원적인 상호작용에서 그쳤다면,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콘텐츠 내의 각종 사건사고를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직접 조작할 수 있도록 하여 더욱 폭넓은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했다. 총 100여 시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미친 자유도의 영화이자 게임,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은 두근거림으로 다가왔다.


  미래 기술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건의 실마리를 쫓아다니며 나는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보여주는 세상에 금세 매료되었다. 수려한 그래픽과 인물들의 섬세한 연기, 그리고 상황에 어울리는 배경 음악이 적절히 어우러진 가상의 디트로이트 세계는 어디에선가 꼭 실재할 것만도 같다. 나의 행동과 선택이 실시간으로 전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색다른 즐거움이었다.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재미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게임과 영화 콘텐츠의 장점만을 전부 취하면서 서사적인 재미와 감동도 전부 잡은 명작은 흔치 않다. 하나의 이야기를 끝맺을 때까지 장장 10시간이 걸렸는데도 피로감은커녕 여운만 진하게 남는 것을 보고 나는 바로 '새로운 이야기' 버튼을 클릭했다. 끝없는 가능성의 세계 속을 또다시 탐험하고 싶었다.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화려한 언변을 뽐내는 ChatGPT를 보면, 머지않아 사람과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탄생하리라 기대하게 된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이처럼 완벽한 안드로이드가 보급화된 2038년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이 미래의 디트로이트는 현대와 미래의 모습을 적절히 섞어 근미래의 가능성을 현실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엮어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사회의 다양한 시스템은 현대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그 속을 채운 기술의 설계와 디자인이 신박하고 새롭다. 정해진 루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감시형 드론이나 내부 구조가 자유롭게 바뀌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평범한 길거리 핫도그 가게나 수동조작 자동차와 함께 등장하기에, 우리는 익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비슷해 몰입하기 쉬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다양한 요소 덕에 즐거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특정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대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이때 현실에서의 조작에 집중하게 되면 몰입이 끊길 수도 있는데,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은 그런 조작마저 근미래의 기술로 포장해 몰입감이 깨지지 않도록 했다. 어떤 범죄 사건이 발생해 현장 조사를 할 때, 안드로이드의 분석 기술로 쉽게 찾아낼 수 없는 흔적을 찾거나 다양한 문제 해결 방법을 예측하고 실패율을 계산하는 방식은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그려내는 세계와 잘 부합한다. 콘텐츠 내의 정보를 자유롭게 탐색하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을 끊김 없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다.


  세계관과 조작 외에도, 서사적 요소 또한 훌륭하다. 개성 있는 세 명의 인물을 통해 '안드로이드'라는 소재를 각기 다른 주제로 풀어낸 덕에 우리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관계를 다각도로 바라보게 된다. 부유한 예술가인 칼의 집에서 그를 돌보던 '마커스'는 부당하게 파괴된 이후 안드로이드의 해방을 위해 싸우고, 순종적인 가정부 안드로이드였던 '카라'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원칙을 깬다. 그렇게 기계로서의 삶에서 벗어나 자유의지를 갖게 된 불량품을 쫓는 '코너'는 인간 파트너인 행크와 함께 카라와 마커스가 얽힌 사건을 쫓으며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개인적인 사건에서 피어난 세 갈래의 불꽃이 서로 엉키고 자라나 근본적인 물음을 엮어낼 때, 우리는 우리와 동등한 누군가를 핍박하고 착취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깨닫게 된다.


  더하여, 우리가 한 번의 플레이를 통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의 길이는 길어야 10시간, 짧으면 5시간 정도지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 준비되어 있는 이야기는 총 100시간을 넘는다. 사소한 선택 하나하나가 결말로 향하는 수많은 분기점에 영향을 주고, 결말 자체도 다양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개인의 선택이 쌓여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분명 서사의 큰 줄기는 정해져 있고 대화 속 대답의 선택지는 서너 개로 한정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 안에서 무한의 자유를 가진 것처럼 느낄 수 있다. 단순히 선택지가 한정적이라는 이유로 이 작품을 외면한다면 말리고 싶다.




  다만 선택 하나하나가 중요한 것에 비해 선택지에 대한 힌트가 적다는 점은 아쉽다. 대화나 사건의 흐름을 내가 의도하는 대로 끌어가고 싶은데, 선택지에 적힌 간결한 단어로는 나의 선택이 의도와 부합한 지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인물의 호감을 얻기 위해 '친구'에 대해 묻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불법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다소 당황스러운 대사가 출력되고는 하는 것처럼(이후로는 선택지를 고를 때 더욱 신중히 고민했다).


  추가로, 시네마틱 을 전혀 스킵할 수 없다는 게 소소한 불편함이었다. 중요한 분기에서는 대부분 시네마틱 컷이 나오는데, 준비된 영상이 끝날 때까지 플레이어는 아무런 조작도 할 수 없다. 이는 몰입도를 높여주지만 동시에 피로감을 줄 수도 있다. 한 컷당 짧으면 1-2분, 길면 10분 정도라고 해도 해당 콘텐츠를 여러 번 보는 사람은 같은 장면을 계속해서 봐야만 하는 것이다. 나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두 번째 플레이를 진행할 때 첫 번째보다도 긴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아직도 보지 못한 분기점이 많아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고민 중인데, 한 번 결말을 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의 대립과 공생을 그려낸 서사는 거의 완벽하지만,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적다는 점이 여전히 아쉽다. 동등한 비중을 갖는 마커스나 코너가 각자 혁명과 자아 성찰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있는 반면 카라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가진다. 문제는 가사 노동형으로 설계된 안드로이드인 카라가 토드에게 위협당하는 앨리스를 보호하며 쌓아가는 '아이 - 어머니'의 관계가 이 테마를 더욱 진부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마커스와 함께 안드로이드 해방에 힘쓰는 '노스'는 자유를 위해서는 기꺼이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강경파다. 때문에 언뜻 보면 주체적이고 강인한 인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마커스 중심의 서사에서는 지도자의 연인이자 보조 자리에 머무르게 된다. 어떤 작품이 벡델 테스트를 무사히 통과한다고 해서 진부한 여성성을 답습하지 않는 건 아니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 다른 부분에서 전부 완벽하기에 더욱 안타까운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소수자를 차별해 왔다.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서는 그러한 역사를 따온 듯한 설정이 많이 등장한다. 과거 흑인과 백인을 같은 좌석에 앉지 못하게 했던 버스처럼 사람과 안드로이드석을 구분해 둔 미래형 버스가 등장하며, 기계로 취급되는 안드로이드들은 법의 그늘 바깥에 방치된 채 폭력에 쉬이 노출된다. 이러한 차별은 비단 인종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회가 정한 정상성의 테두리 바깥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똑같이 폭력과 안전을 걱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시대가 바뀌어도 차별은 여전한 셈이다. 차별의 화살은 지치지도 않고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낸다. 사회의 구석구석을 내 편과 네 편으로 조각조각 잘라내며 증식한다.


  하지만 다수와 소수를 나누는 경계는 수없이 많은 교차선이 만나 생겨나기 때문에, 소수자였던 이들이 다른 상황에서는 다수가 되어 권력을 휘두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수의 편에 선 사람들은 본인이 누군가의 착취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가 쉽다. 우리가 끊임없이 사회의 차별을 발견하고 깨끗이 닦아 없애야 하는 이유이다. 아직도 완전한 안드로이드가 나타날 세상은 멀었다. 하지만 그날이 왔을 때 토드나 개빈처럼 추하게 발버둥칠지, 아니면 로즈처럼 잔잔한 포용을 나눌지 선택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친절하게도 우리에게는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이 주어졌다. 가장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무한의 기회를 주는 거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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