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운전자의 멍청한 교통사고
억울하다. 맹세컨대 결코 운전에 자만하지도, 우쭐하지도 않았다. 그저 소심했던 운전에 용기를 조금 내봤을 뿐인데 두 번째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말았다. 첫 사고 이후 약 6개월 만이었다.
그날은 아침 일찍 장난감 도서관에 들러 장난감을 반납하고, 겨울학기 문화센터 첫 수업에 가는 스케줄이었다. 습관적으로 네비게이션을 켰는데, 네비는 그날따라 다른 길을 안내해 줬다. 원래대로라면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려고 했겠지만,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보자고 용기를 낸 것이 화근이었다.
초행길이라 그랬나, 가는 길에 좌회전 구간을 두어 번 놓쳐서 결국 유턴을 하게 됐다. 유턴 구간에서 갑자기 받은 좌회전 신호를 보고 “여기 맞아?”, “여기서 유턴 맞지?” 대답해줄 리 없는 질문을 네비에게 몇 차례 걸어가며 유턴을 했는데, 길가에 주차되어 있는 스타렉스를 그만 박아버린 것이다.
넓은 도로가 아니었는데 급하게 유턴을 하면서 크게 회전을 한 탓도 있었고, 왠지 저 차에 닿을 것 같다는 직감(?)이 들기도 했지만, 매번 한참 떨어진 차간거리도 벌벌 떨며 닿을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떨던 나였기에 어쩌면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안 닿을 수도 있어! 하고 이상한 용기를 낸 결과가 바로 그것이었다. 용기를 낼 타이밍이 아니었는데 바보같이 용기를 내버린 결과는 꽤 처참했다.
사실 나는 평행주차를 해본 적이 없고, 할 줄도 몰랐는데 그 스타렉스를 받아버리고 곧장 비상등을 켠 채 평행주차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경황없던 그 순간 핸들을 휙휙 돌리고 있는 스스로에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차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는 화가 난 상대 차주가 나타났다. 대로변에 있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신 듯했다. 갑작스럽게 사고를 일으킨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했다. 유턴하는 과정에서 운전 미숙으로 차를 박게 되었다고 상황을 설명하며 거듭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보험 처리하기로 이야기를 하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많이 놀라셨죠? 괜찮으세요?”
보험사에 전화를 걸자마자 내게 해준 그 한마디에 미간까지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잘못했는데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준 누군지도 모를 그 상담원 분이 아마 내 옆에 계셨다면 당장이라도 껴안았을 것 같은 따뜻함이었다. 사고 접수는 처음이라 걱정했는데 물어보는 대로 대답만 하면 됐다. 보험 가입자와의 관계, 사고 발생 시각과 지역, 사고 경위, 상대방 이름과 연락처, 차량 번호, 차종 등을 알려준 것 같다.
화가 난 차주에게 보험사에 전달할 성함과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소심하게 여쭤봤는데, 그는 전화를 대신 받아 대뜸 아무 죄 없는 상담원에게 거기 무슨 회사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나에게 운전면허증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했다. 이런 멍청한 사고를 낸 내가 무면허인지 확인하려는 의도였을까, 아니면 도대체 어떤 신분의 것이 나의 차를 이렇게 찌그러트렸나 알고 싶었던 걸까. 그는 “이건 그쪽 과실 100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내 차로 돌아오니 불쌍한 이 녀석도 오른쪽 헤드라이트 부분이 다쳤다. 크게 망가진 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타고 다니려 했는데, 오른쪽 밑부분에 있는 뭔지도 모를 검은 물체가 덜렁덜렁거리고 있었다. 뭐야 이건…. 속도를 내서 들이받은 것도 아닌데 1톤이 훨씬 넘는 자동차가 뭐 이렇게 약해빠졌는지 속상해 죽겠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 직감한 건지, 아이는 카시트에 앉아서 얌전하게 날 기다려줬다. (고마워ㅠㅠ)
남편에게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전했더니 곧장 전화가 걸려왔다. 경황을 설명할 틈도 없이 이번에는 뒤에 있던 차가 크락션을 빵빵 울려서 일단 가던 길을 다시 출발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의식이 반쯤 털려나간 그 상태에서 정신줄 잡고 무사히 운전한 나에게 칭찬스티커를 100개쯤 붙여주고 싶다.
부랴부랴 장난감을 반납하고 문화센터까지 서둘러 달렸는데, 설상가상으로 아이가 잠들었다. 첫 수업이라 결석하고 싶지 않았건만 깨워도 안 일어난다. 오늘은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는 날이다. 시동을 끄고 잠든 아이의 숨소리 외에 들리지 않는 고요한 차 안에서 나는 참아왔던 긴장을 풀고 잠깐 울었다.
마음 같아서는 차를 어디다 버려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으니까 집으로 꾸역꾸역 데리고 왔다. 뭔지 모를 그 덜렁거리는 검은 물체 때문인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릴 때마다 끽끽 소리가 났다. 그냥 두면 안 될 것 같아서 결국 자차도 보험 접수를 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보험사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니, 이거 불법주차 차량인데? 과실 나와요. 불법주차 구역에 왜 차를 세워둬요! 운전 미숙이라고 해도 거기에 차 없었으면 보도블록이라도 부딪혀서 자차만 긁었을 일인데!”
아…? 사고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도로에 버젓이 노란색 두 줄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봐야 과실은 90:10이고, ’그 차가 없었더라면‘이라고 변명하기에는 내 운전 실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내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암흑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구렁텅이에 작은 빛이 한줄기 스며들어왔다. 나 대신 이렇게 화 내주는 보험사 직원분 도대체 당신은…
멍청한 초보운전자 때문에 멀쩡한 차를 갑자기 수리하게 된 차주 아저씨에게는 정말 정말 죄송스럽지만, 과실 100이야!라고 큰소리쳤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아주 살짝 통쾌했다. 저도 이제 더 조심해서 운전할 테니까, 아저씨는 불법주차 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