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돌만 지나면 괜찮아지는 거 맞나요?
육아를 하면서 꽤 자주 들어왔던 말들 중 하나다. 진짜 괜찮아진 게 맞는 걸까? 그렇다면 무엇이 괜찮아진 걸까? 세 돌까지의 육아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전쟁터 같아서 가장 힘든 시기라고들 한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그 시기를 좀만 버티라는 위로 차원에서 해줬던 말인 건지, 세돌이 지나면 진짜 뭔가 괜찮아져서 그렇게 얘기했던 건지 문득 되묻고 싶어 진다.
지난 봄, 아이는 세돌을 넘겼다. 나는 무의식 중에 아이의 세돌 생일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괜찮아진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육아가 편해질지도 모른다는 내면의 잔꾀가 발동한 듯하다.
그렇다면 다시 논점으로 돌아와 '세돌이 지나면 괜찮다는 말이 사실입니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육아가 과거에 비해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기는 있다. 우선 가장 큰 부분은 '잠'이다. 소싯적 수면교육을 하네 마네를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면 요즘은 잠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눕고, 졸리면 자고, 자다가 나쁜 꿈을 꾸지 않는 이상 잘 깨지도 않아서 그렇게 염원하던 통잠을 잔다. 물론 체력이 좋아진 탓에 밤잠을 자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낮잠을 안 자고도 버티는 괴물 같은 습성이 생겨나서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적당한 나의 수면 시간'이 보장되기 때문에 괜찮다.
먹는 것도 꽤 편해졌다. 어른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외식도 할 수 있고, 아이 음식이라고 간을 따로 해서 요리를 두 번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서 좋다. 또, 식판에 밥을 차려 주면 스스로 밥을 먹기 때문에 나의 식사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 근데 우리 아이의 경우, 어렸을 때 분유와 이유식을 훨씬 더 잘 먹었어서 먹는 문제는 그 시절이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은 편식쟁이가 되어버린 바람에 정해진 음식 위주로 먹는 편인데, 비주얼이 별로거나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이면 입에 대지도 않는다. 그래서 밥 차려주고 부들부들하는 날들도 많지만, 과거에 비해 괜찮아졌는지를 묻는다면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괜찮다고 대답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세돌이 지나니 의사소통이 가능을 넘어서 꽤 디테일해졌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는 것도 편해진 부분 중 하나다. 갓난쟁이 시절에는 계속 울기만 하니까 뭐 때문에 우는지 알 길이 없어서 아기 울음소리를 분석하는 어플을 깔아 제 딴에 분석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적어도 그런 답답함은 없다. 그리고 세돌 전후로 기저귀를 떼서 이제 더 이상 핫딜가에 기저귀를 쟁이거나 당근으로 저렴한 기저귀를 찾아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그런데 세상 일은 역시 새옹지마고, 동전에는 양면이 있고 뭐 그렇다. 세돌이 지나고 아이는 '미운 4살'로 돌변했다. 재우고 먹이는 것들이 편해졌어요~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이는 나의 인내를 시험하고, 나의 자아를 벼랑 끝으로 몰아갔다. 억지스러운 떼도 늘었고, 뭐든 본인이 스스로 하려고 하고, 그러다 잘 안되면 화내고 울고, 고집도 강해지고, 부정어를 강하게 내뱉기 시작했다.
어른들한테 인사하는 걸 그렇게 좋아하던 아이였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할머니가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자마자 '인사하지 마!', '쳐다보면 안 돼!'라고 소리쳐서 난감하게 만들거나... 친척 어른이 예쁘다고 쓰다듬으면 '만지지 마!'하고 소리쳐서 민망한 상황을 만든다거나... 어딘가 사회에 불만 가득한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집에서도 본인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생기면 무조건 울면서 소리 지르고, 떼를 쓰고, 울음을 좀처럼 그치지 못하고 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울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로 20분을 내리 운 적이 있다고 했다. 우는 아이 모습이 짜증 나서 화라도 내면 그것이 아이를 자극해서 더 울게 만들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별 거 아닌 일 같은데, 사소하게 수 틀리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울어 재끼는 통에, 애 하나에 어른 둘이서 녹다운되는 날들도 많아졌다. '엄마 미워!', '아빠 저리 가!' 등의 잔잔한 말로도 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 시기에는 부정적인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가 발달하고 있어서 아이가 떼쓰는 행동들은 자연스러운 성장과정이니 사랑으로 보듬어주세요~라고 하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은 욱하고 짜증이 나서 아이를 사랑으로 품어주지 못할 때가 많다.
어느 엄마들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자는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면 오늘 하루 잘해주지 못함에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침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화를 내는데, 나는 괴물인가...? 물론 우리 아이 정도면 꽤 준수한 미운 4살이고, 꽤 착한 편이라고 생각은 한다만, 유난히도 떼를 많이 부리는 날에는 착하긴 개뿔! 너만 힘드냐! 나도 엄마 처음해보는 거라 힘들다! 라며 뻔뻔해지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부모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하기에 별 기대 없이 한 번 참석해 봤다. 강사님 말씀에 따르면, 대학교 수업에 가서 동일한 주제로 수업을 하면 아무도 관심을 안 보이는데, 이렇게 부모님들 모셔놓고 수업을 하면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져서 듣는다고 한다. 역시 육아는 이론이 아니라 실전인 것...
몇 시간에 걸친 교육 내용 가운데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것들을 기록해 본다.
아이는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이며, 건강과 타인에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웬만하면 아이가 세상을 탐색할 기회를 허용해 주세요.
영유아 시기에 경험한 긍정적인 감정은 전두엽을 자라나게 하고, 이것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어린 영유아의 경우, 미디어를 보여주면서 불필요한 외식을 하거나, 주말에 외출을 강행해서 아이가 월요일에 비실비실하게 등원할 정도로 피곤하게 만드는 등 어른의 편의를 위한 것들은 지양하세요.
아이의 노력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해 주세요.
아이와 있을 때 스마트폰은 만지지 마세요.
하루에 10분이라도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아이를 깔깔 웃게 만들어주세요.
아이에게 엄마(아빠)는 너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걸 상기시켜 주세요.
수업을 듣고 남편과 나는 많은 생각과 대화들을 나눠볼 수 있었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편하자고 안된다고 제한해 왔던 것들이 많았던 건 아닌지 다시 돌아보게 됐다. 이를테면 아이가 자기 전 찰흙 놀이를 한다고 하거나, 소파에서 찰흙 놀이를 하겠다고 하면 더러워지니까 안된다고 못 하게 했었는데, 어질러진 건 치우면 그만이고 더러워진 손은 닦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아이는 본래 들판에서 뛰어놀다가 엄마가 보고 싶으면 엄마한테 와서 엄마 냄새도 맡고, 엄마도 만지다가 다시 들판으로 뛰어 나가는 존재인데, 요즘 아이들은 일찍부터 기관생활을 시작해서 그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기관에 다니며 엄마 아빠와 떨어져 지내는 아이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어린이집에 가기 힘들었을 텐데 오늘도 어린이집에 잘 다녀와줘서 고마워~"라고 인사를 전하라고 했다.
뱃속에 품고 있었을 때부터 너를 얼마나 아끼고 기다려왔는데, 고작 3년이라는 시간을 동고동락하면서 어느새 나는 짜증 가득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쉽게 행동으로 따라주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육아를 해야 하나 싶었던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 강사님이 말씀하셨던 부분은 사실은 새로운 것들이 아니라 어쩌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는지도 모른다. '왜 아이를 잘 키워야 하지?', '왜 육아를 잘해야 하지?'에 대해 놓치고 있었던 명분을 다시 장착한 것 같았다.
부모 교육이 끝나고 어린이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엄마~ 하고 달려오는 아이를 보자마자 괜히 눈물이 났다. 미안해, 엄마가 더 잘할게.
사람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지만, 변하는 '척'이어도 괜찮으니 태도를 조금씩 바꿔봤다.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아이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고, 엄마는 네가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널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걸 알려주고, 네가 울면 엄마도 속상하다며 아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는 등의 행동을 했더니 신기하게 아이도 그에 맞는 아웃풋을 보여줬다. 사랑표현을 더 해주기도 했고, 울고 떼쓰면서도 엄마의 말을 듣고는 스스로 울음을 그치기도 했고, 왠지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나를 알아주기라도 하듯 어떤 날은 화를 한 번도 내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아이는 나에게 "엄마 힘들어?", "엄마 기분이 안 좋아졌어?"라고 종종 물어보는데, 내가 짜증이 나거나 힘들어 보이는 순간을 아주 세심하게 잘 알아차린다. 그만큼 누구보다 나에게 관심이 많고, 늘 옆에서 날 지켜보고 있고,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세 돌까지의 육아가 아이의 생존을 위한 서포트였다면, 이제부터의 육아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참된 인간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부터가 좋은 사람이 아닌데, 널 좋은 사람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나는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인데, 너에게 어떤 형태의 사랑을 나눠줄 수 있을까. 가끔은 육아라는 책임과 부담이 무거워서 피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 간에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준다. 가끔은 그 사랑이 너무 커서 '그래, 네가 어른인 나보다 훨씬 낫다' 싶은 순간들도 있고, 아이를 보고 배우는 태도와 마음들이 있다.
여전히 나는 가끔 육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아이에게 무심코 짜증을 내기도 한다.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서 후회를 하는 날들이 훨씬 더 많지만, 오늘보다 내일 더 아이를 사랑해 주자는 마음 하나만 있다면 아직 한참이나 남은 나의 육아라이프를 그럭저럭 즐겨볼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