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작가 강연회 후기
지난 2014년, 김영하 작가의 산문 <보다, 읽다, 말하다>시리즈가 나왔을 때 작가님의 강연회를 갔었는데 거의 10년이 지나 몇 달 전 중랑구청에서 진행된 김영하 작가의 강연회를 다시 한번 참석하게 되었다. 이날의 주제는 ‘우리가 책을 읽는 진짜이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인간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나누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것이 인류의 충동. 그러면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았을까?’에 대한 질문으로 김영하 작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진화에 승리했다고 말한다. 그 말인즉슨, 이야기가 문명의 중요한 요소였고, 다른 더 뛰어난 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모사피엔스가 살아남은 이유는 호모사피엔스에게 ‘픽션을 믿는 능력’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믿음이 형성되었고, 공감대 형성으로 인해 대규모 협력이 가능해져서 살아남는데 유리했다고 한다. 재미있고 새로운 관점이었다.
또한 이야기는 정보와 교훈을 오래 지속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정보를 단순히 정보로만 제공하면 그 속에는 감정과 느낌이 없기 때문에 기억이 오래 남지 않는다. 더불어 이야기는 우리가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우리를 준비시켜준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아가서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시켜주고 공감을 통해서 남을 알게 될 수 있다. 작가님이 말하길 우리 모두는 타자가 되는 순간이 필요한데, 이야기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말씀하셨다. 과거의 나도 타인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감정이 언어화되는 순간 과거의 내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도와준다.
워낙 김영하 작가가 말을 잘 하는 사람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두 시간 남짓의 강연에서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강연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하듯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작가님은 강연 내내 강연의 주제였던 ‘우리가 책을 읽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함과 동시에 끝날때 까지 여러가지 이야기를 엮어서 그에대한 답을 풀어놓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질의응답시간에도 질문에 대하여 성의 있게 답변해 주셨는데, 인상 깊었던 두 가지 답변이 있었다.
첫 번째는 ‘자기 마음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는데, 그에 대해서 (역시 작가님 답게) 타인을 볼 때 다양한 시나리오를 생각할수록 포용력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누가 내 어깨를 치고 갈 때 ‘안 좋은 일이 있나 보다, 코인에서 돈을 잃었나 보다..’ 라고 스스로 새로운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면 이해 못 할 일이 없다고 하셨다. 또한 두 번째 질문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아’에 관련된 답변을 하셨는데, 그에 대한 답변으로 ‘나’는 고정되어있지 않고 내 안은 많은 타인들이 들어와있다. 이게 우리를 힘들게 하곤 하는데, 이 사실을 인정하면 편하다고 답변하였다. ‘나’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나를 판단하게 되는데, 내가 바뀌면서 과거의 이야기도 편집이 된다. 결국 계속해서 자기 인생에 이야기를 공급해 주어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인생의 중심에 자기를 잘 놓고 풀어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강연이었고,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