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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애정 Jan 11. 2024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태국, 그 길 위에서

치앙 마이 여행 1일 차.

직업특성상 평소 휴가를 원하는 날에 낼 수가 없다.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짧은 휴가가 주어지는 것이 전부인데, 기다리던 겨울휴가가 정해지고 바로 태국을 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대학교 졸업반시절, 말레이시아에서 짧은 인턴 기회가 주어졌었다. 6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았다. 싱가포르,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중간중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변 동남아시아 국가를 여행했다. 태국, 방콕은 여행자의 도시 다웠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밤이면 거리에 모여들었다. 이후 건너간 치앙마이는 방콕과 또 다른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하고 쉴 수 있는 곳. 딱 그런 곳이었다. 이게 벌써 십 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태국으로 발길을 떼어본다.


6시간의 비행 후 도착한 치앙마이는 예전과 달리 훨씬 활기가 넘쳤다. 예전의 방콕 느낌도 나고 예쁜 카페들이며 소위 힙하다는 레스토랑들도 즐비해있었다. 여행 전 신나는 마음으로 엑셀파일에 꼼꼼히 모든 일정을 짜고 정리해 놓았다. 막상 도착하니 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일어나서 천천히 동네산책을 하다가 비건 스무디볼을 파는 곳에 들어갔다. 망고스무디를 먹고 땅에 떨어진 플루메리아꽃을 보니 ‘아, 내가 태국에 왔구나.’하는 감각이 살아났다. 천천히 또 걸어서 사원에 도착했다. 십 년 전 의무적으로 돌아보던 사원이 어쩜 이리 신비한 곳인지 감탄이 나왔다. 그리고 뚝뚝이를 타고 예술인마을에 도착했다. 뜨개질을 뜨는 사람, 음식을 파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사람, 목공을 하는 사람.. 정말 다양한 예술인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치앙마이에서 생산되는 커피로 드립을 내려주는 조그만 가게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오후가 되니 미리 예약해 놓았던 쿠킹클래스 시간이 다가왔다. 호텔로 픽업을 왔는데, 치앙마이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농장에서 진행이 되는 수업이라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현지 시장에도 들리고, 농장에서 직접 키우는 식물들을 설명해 주시고 하나씩 바로 뜯어서 맛도 보게 해 주셨다. 신선한 레몬그라스향을 맡고, 처음으로 히비스커스꽃도 보았다. 농장을 둘러본 후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알고 보니 이탈리아 셰프였는데, 이미 한 달째 여행 중이고 태국요리도 요리를 해보고 싶어 신청을 하였다고 했다. 그 밖에 미국에서 온 엄마와 딸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잠시 휴식을 갖으려는 프랑스 커플, 현재 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영국친구들, 함께 대학원을 다니며 취미로 하는 오케스트라에 함께 속해있다는 독일 친구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만들고자 하는 요리마다 자리를 바꾸고, 팀을 나누어 절구질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다들 친해져서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맛있게 음식을 즐겼다. 


2023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처음 보는 한국인여성과 재즈바에서 만나 함께 한 잔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리랜서로 해외영업을 하는 분이라 세계에 안 가본 나라가 없었다. 우리는 각자 가본 나라와 경험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12시가 되기 15분 전쯤 거리로 나왔다. 거리에는 풍등이 날리고 있었다. 조금 걷다가 그분이 말했다. “어? 이 호텔에서 풍등이 위로 날아가는데요? 들어가 볼까요?” 우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안녕’ 대신 ‘안영’이라는 글씨가 적힌 호텔로 입장했다. 호텔 수영장에서 새해파티가 한창이었는데, 들어선 우리에게 직원들은 샴페인을 건네줬다. 공짜 샴페인이라니, 아니 이게 웬 떡인가. 여기서 새해맞이를 하면 되겠다 싶어 자리를 잡았는데 옆에 풍등이 놓여있었다. 내친김에 우리는 풍등까지 함께 날리고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 같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Happy New Year!!!” 서로서로 새해 인사를 나누고 한참을 웃다가 유유히 호텔을 빠져나왔다. 

거리에는 전보다 훨씬 더 많은 풍등이 날리고 있었고, 너무 아름다웠다. 그렇게 한참 거리를 걷다가 사원에 들어갔다. 태국사람들은 사 원 안에서 머리에 긴 실을 연결한 채 뭔가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사 원 안에서 물건을 팔고 정리하던 태국상인에게 물어봤다. "이게 뭐야? 무슨 뜻이야?", "이 실은 부처님과 연결되어 있는 거야. 건강, 행복, 사랑 같은 것을 의미하는 거야."라고 말하더니 내 머리에도 실을 빙빙 둘러주고는 유유히 길을 떠났다. '그게 내가 올해도 필요한 거거든, 고마워'. 늦은 저녁, 숙소로 걸어갔다. 이게 다 오늘 일어난 일이라니.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오늘 만난 사람들이라니. 잠들면서 내일이 기대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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