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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미 Mar 03. 2024

룰 메이커와 플레이어의 상호 관계 (협업 vs. 경쟁)

Written by 클래미

요즘 넷플릭스에서 볼 것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독 해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새로운 콘텐츠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가끔 다시 보고 싶어서이다. 그중에서도 나의 최애 프로그램은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며 먹방을 하는 내용이다.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은 많지만, 호스트 특유의 톤 앤 매너와 영상미가 매우 매력적이다. 단순히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어 조금씩 아껴 보는 중이다.


최근에는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교토, 두바이, 올랜도 등을 배경으로 하는 새 에피소드가 공개되었다. 규모는 더 커졌고, 각각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나라들이기 때문에 더욱 기대된다!


필이 좋은 여행, 한입만! (스코틀랜드 편)


그렇게 일요일 오후를 넷플릭스 시청으로 즐기고 있던 중, 갑자기 두 가지 잡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나는 "룰 메이커"와 "플레이어"의 상호 관계에 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샤워할 때 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참고로, 이 두 주제는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으며, 보다 가벼운 두 번째 주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1) 샤워할 때 왜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를까? ('생각의 고요'를 경험하는 순간)


우리는 매일 다양한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이는 우리의 지식을 넓혀주는 한편, 때로는 그 정보에 의해 지나치게 영향을 받기도 한다. 특히 상반되는 메시지들을 처리하다 보면 때때로 뚜렷한 결론 없이 모호한 의미만 남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시간을 무언가를 듣거나 보는 데 할애하다 보니, 샤워하는 시간만큼은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처음에는 샤워 중에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켜기도 했지만, 욕실의 울림 때문에 제대로 듣기 어려워 최근에는 그냥 꺼두고 샤워를 한다.


이처럼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조용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에, 그 불편한 고요함을 깨뜨리려는 듯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레 새로운 정보를 생성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가 형성되기 시작하지만, 새로운 자극이 없을 때 창의적인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생각이 너무 복잡해지면 이를 정리하고자 샤워를 하며, 샤워는 몸과 정신을 동시에 정화할 수 있는 엄청난 순기능이 있는 듯하다.


(2) 룰 메이커와 플레이어의 상호 관계 (협업 혹은 경쟁 상대를 잘 고르기)


내 이전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나는 세계정세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넘어, 이는 내 커리어와 생존과도 직결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된다.


최근 정세를 살펴보면,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의 권력 게임이 점점 심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국과 일본과 같은 국가들도 그 사이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많은 개발도상국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에 올랐는지, 반면 다른 국가들은 왜 그러지 못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내 결론은 한국이 플레이어로서 게임의 룰을 잘 따르며 전략적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 깊이 파고들면, "룰 메이커"와 "플레이어"는 각각 명확히 구분되는 역할을 가지며, 둘은 협업 관계에 있고, 동시에 룰 메이커 사이나 플레이어 사이에는 경쟁 구도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냉전 시대에 룰 메이커는 미국과 소련이었다. 이 두 강대국은 서로 경쟁 관계에 있었고, 한국은 미국의 규칙을 따랐으며 북한은 소련의 규칙을 따랐다. 결국 이 경쟁에서 미국이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한국 역시 간접적으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룰 메이커로는 미국과 중국을 꼽을 수 있다. 러시아는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었으며, 유럽연합(EU)은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스스로 시장의 규칙을 바꿀만한 힘이 부족해 보여서, 이들은 더 플레이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규칙 - 체스


체스 게임을 예시로 들면 이해가 더 쉬워진다. 미국은 체스라는 게임의 규칙을 제시하며, 모든 이가 이 게임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이때 한국은 플레이어로서 비숍, 루크, 퀸 등 어떤 역할을 선택할지 고민한다. 미국과 게임 규칙을 공유하기로 한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 체스의 각 말마다 고유한 능력이 있듯, 각 국가도 자신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반도체, 독일은 제조업, 영국은 금융, 프랑스는 문화, 사우디아라비아는 에너지 분야에서 강점을 보인다. 각자 자신의 강점에 맞는 역할을 신속하게 선택한다.


하지만, 유사한 역량을 가진 국가들은 동일한 역할을 두고 경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일본이나 대만과 경쟁할 수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카타르나 아랍에미리트와 경쟁할 수 있다.


그렇기에 플레이어인 한국은 다른 역량을 가진 국가와는 협업하기 용이하지만, 유사한 역량을 지닌 국가들과는 지속 가능한 협업을 구축하기 어려울 수 있다. 물론 현실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2등과 3등은 협력하여 1등을 견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중국의 규칙 - 장기


룰 메이커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마치 체스가 아닌 장기를 두자고 제안하는 것과 같다. 장기에서도 각 기물은 독특한 역량을 가지고 있으며, 러시아, 이란, 북한과 같은 국가들이 이 게임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은 체스 게임에서 상당한 능력을 가진 말을 확보한 상태다. 이 힘을 유지하려면 세계가 체스라는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체스에서 장기로 규칙이 변경되는 조짐이 없는 한, 우리가 장기로 전환할 필요는 없다.


또한 체스 내에서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지되 상호 보완적인 협력을 추진할 수 있는 플레이어와는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룰 메이커 입장에서도 이는 원하는 구도일 수 있다) 그러나 유사한 역량을 지닌 플레이어 간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과 견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또한, 만약 플레이어가 룰 메이커에게 직접 도전한다면, 즉각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때 일본이 미국의 경제 수준을 추격하려 했지만 1985년에 플라자 합의(*)로 큰 타격을 받았던 경우처럼 말이다.


(*미국이 인위적으로 달러의 가치를 하락시키기 위해 다른 나라 화폐들(특히 일본 엔화)의 가치를 올리도록 한 것(평가 절상)이 합의의 골자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당시 경제적, 문화적으로 미국의 입지를 슬슬 침범하던 일본을 성공적으로 저지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출처: 나무위키)


정리하자면, 이는 왜 한국과 미국이 플레이어와 룰 메이커의 입장에서,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합이 잘 맞는지를 설명해 준다. 반면에 한국과 일본은 둘 다 체스의 규칙을 따르는 정치/경제적 우방국이지만, 관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관점은 세계정세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유효한 프레임워크로 활용될 수 있다. (정부와 사기업, 상사와 동료 등) 각자의 상황에 맞게 이를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얘기한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잡생각이 많아지면 샤워를 해보자 (핸드폰은 바깥에 두고)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 협업하거나 경쟁할 대상을 신중히 고르자 (가족, 친한 친구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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