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시내 - 런던날씨보다 더 오락가락하는 여행자의 마음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버킹엄 궁전에서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서 들어간 공원. 아마 지금 생각해보니 세인트 제임스 파크였던 것 같다. 유럽을 다니면서 시내 곳곳에 공원이 있어서 좋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지나가는 하나의 통로로서 많이 사용되지만, 유럽에서는 하나의 여행 코스로 잡아 누워서 일광욕도 하고는 했었다. 그 때마다 너무 좋았어서 나중에는 언젠가 영국에 한달쯤 가서 일주일은 하이드파크에서 돗자리를 깔고 간식을 먹으며 책을 읽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물론 아직까지 실행하지는 못했다... 이런 다짐을 한 지 어언 13년 전. 일상에서 만나는 공원과 여행에서 만나는 공원이 주는 느낌이 다른 것은 우리 나라의 공원 문화의 차이일까. 어쨌든 각설하고.
https://goo.gl/maps/V77UXdifNrUE3GqRA
초록초록한 공원에서 백조를 보면서 여행을 나름 만끽하고 있을 때,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이, 당연히 가방에 우산이(...) 없었다. 평소 한국에서도 비맞는 걸 워낙 싫어해서 쨍하게 맑은 날도 가방에 우산을 가지고 다녔다. 다들 무겁지 않냐 물어봤지만 그 정도 무거움보다 비 맞는 찝찝함이 나의 기분을 훨씬 상하게 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연히 여행 올 때도 나름 튼튼한 접이식 우산을 캐리어 한 쪽에 잘 챙겨놓았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 일년 365일 중에 우산을 빼고 다니는 한 열흘 언저리쯤 꼭 비가 오던 머피의 법칙은 여행에서도 빗겨나가지 않았고. 아침나절 노부킹과 여행사 노연결의 혼란 속에서 우산을 챙겨나오지 않았던 것.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우산이 없다는 것에서 1차 당황. 마찬가지로 친구도 없다는 것에 2차 당황한 우리는 우선 눈에 보이는 나무밑으로 걸음을 옮겼다.
번개는 안 치니까 괜찮겠지, 런던은 원래 날씨가 오락가락 한다고 했으니까. 가벼운 마음에 나무 밑에 서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친구와 잘 알지도 못하는 singing in the rain 노래를 불렀다. 런던에서 맞는 비는 뭔가 낭만적인 것 같았다. 그러기를 잠시, 한 키 큰 영국남자가 어색하게 하이, 인사를 건네며 나무 아래로 뛰어들어왔다. 영화 속 한 장면이라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 잠시 비를 피한 남자는 곧 머리를 가리고 뛰어가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우리는 약간 불안감에 빠졌다. 영국은 비가 금방 그친데, 라는 말을 믿으며 기다리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고, 누가봐도 현지인인 사람도 저렇게 비를 맞고 뛰어가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되나 하는 마음. 익숙하지 않은 도시에서 피곤한 여행객들의 마음은 마치 런던의 날씨처럼 아주 잠깐의 시간에도 오락가락했다. 좀 전 노래를 부르던 낭만적이라는 마음은 금새 어디로 사라졌는지 갑자기 마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뛰어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친구랑 같이 머리를 가리고 뛰기 시작했다.
https://goo.gl/maps/C9ak4ijmVM2m4psy6
우리의 목적지는 내셔널 갤러리. 스마트폰도 없고 하다못해 종이 지도도 없던 우리는 사전에 가이드북을 통해 확인했던 길과 표지판만 보고 냅다 뛰기 시작했고, 다행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관람객이 많아서인지, 내부 입장객을 통제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입장을 하기 위해 줄을 서야했고 어느새 비가 그쳐있었다. 어설프게 비를 맞아 찝찝해진 몸이 꽤나 기분이 나쁘고 그사이 또 비가 그쳤다는 것이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저 멀리 구름 낀 하늘과 함께 보이는 내셔널 갤러리 건물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조금 마음이 좋아졌다. 정정한다. 여행객의 마음은 런던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이렇게 힘들게 도착한 내셔널 갤러리지만 사실 안에서 무엇을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굉장히 기억에 남는 것은 눈이 아플만큼 강렬한 붉은색 벽지와 작게 나누어진 전시관 중앙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도록 놓여있던 벤치. 그리고 정말로 그 강렬한 분위기에 지지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유롭게 그림을 감상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 꼬마들. 강렬하고 엄숙한 느낌의 미술관에서 너무나 자유롭게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아이들이 인상깊었다.
사실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많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다녔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들은 손에 꼽는다. 오히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곳은 가지말고 차라리 다른 곳을 갔어야 했는데 하는 곳들도 있다. 물론 글을 쓸 때마다 생각하지만 그 때도 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그런 선택을 할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때 그런 시행착오들을 겪어보면서 나를 더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그것들을 하나씩 알게되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여행의 과정일것 같다.
사실 우습게도 첫날의 여행은 여기서 끝이 난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친구가 보고 싶은 그림은 세인즈베리관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 날 세인즈 베리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관람시간이 끝났다고 기억한다. 여행 첫날 계속적으로 붙들고 있었던 정신줄이 툭 끊어진 것은 그 때. 이제 막 해가 저물어 가는 오후 시간이었고 변변한 식사도 못했지만 우리는 둘이 눈을 마주치고 숙소로 돌아갈까? 라고 물었고 응이라고 대답했다. 누가 물었는지 누가 대답했는지도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중요한 것은 둘의 의견이 일치했다는 것이다.
아침 나절 나를 쇼크에 빠뜨렸던 노부킹 사건도 너무나 쉽게 해결이 되었다. 호텔에 돌아갔더니 프론트 직원분이 우리에게 4일 동안 호텔이나 방을 옮기지 않고 같은 방을 사용해도 좋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예약했던 사람들이 오지 않은 것인지, 방이 정리가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런던에 도착해서 들었던 이야기 중에 가장 반가운 이야기였다. 사진을 다시 보니 다소 촌스럽고 낡은 호텔이지만 그래도 당시에서 정말 따뜻한 My sweet home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는 이 곳. 근래에는 그래도 리모델링을 했다고. 이 사진은 13년전 사진이니 참고만.
https://goo.gl/maps/YSNCRZ1k4pn5SBE1A
그렇게 우리는 방에 들어왔고, 걱정되는 마음에 잔뜩 싸주신 햇반으로 저녁을 떼우........려 했으나 무려 둘다 샤워 후에 바로 뻗어버렸다. 그리고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일기를 쓰고 배고픔에 몸부림을 쳤다는 전혀 낭만적이지 못한 이야기는 이제 DAY1.을 달고 글을 시작한지 다섯편만에 DAY2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