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고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신의 권능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을 날’을 알게 되면서 사라진다. 타당한 상상이다. 결과를 아는 게임만큼 재미없는 것도 없으니까.
원래 불확실성은 인생을 구성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아무리 원하지 않아도 불확실성은 항상 곁에 있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건 퍽 어려워서 우리는 오늘도 주식 창을 켜고 ‘껄무새’가 된다. 살 걸, 팔 걸, 팔지 말걸, 그때 더 살 걸 등등.
하나하나 신중하게 내린 그 당시 최선의 선택이 막상 까 보니 영 아니더라- 하는 이야기는 영웅문 너머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최근엔 꽤 아끼던 카페의 폐업 소식을 들었다. 나름 잘 되고 있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이전을 진행하던 차에 코로나가 유행했고 순조롭게 모든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은 탓이 컸다. 열심히 본인의 최선을 다해서 살았지만 그걸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미 한 참을 걸어왔는데 목적지와 정반대로 향하고 있었다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씁쓸하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살면서 생기는 이런 무수한 ‘후회’를 수용하는 책이다. 주인공 노라는 운이 좋아서 - 주인공이니까 - 12시 00분에 도착한다. 무의식은 본인에게 가장 안정적인 공간을 그려내고 그 속에는 수많은 또 다른 나의 삶이 전시된다. 마치 슈뢰딩거 고양이가 갇힌 상자 같은 공간에 갇혀서 노라는 사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할 걸”의 삶을 산다. 한 때 약혼까지 했던 사람과 결혼한 삶,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재능을 꽃피우는 삶, 어릴 때 해보고 싶었던 직업을 가진 삶 등등.
평행세계 개념을 준용한 또 다른 노라들의 삶은 모두 독립적이고 그들 나름의 굴곡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미드나잇 라이브러리에서 노라가 읽는 ‘책 속의 삶’은 말 그대로 하나의 단편처럼 재미있게 읽힌다. 동시에 작가가 철학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적재적소에 위치한 인용문과 철학적 사유를 감상할 수 있다.
나는 위로에 영 재주가 없어서 이 책이 정말로 삶에서 도망치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후회하는 선택, 후회하는 일, 후회하는 가정, 후회하는 삶이 정말로 후회할 만 한가? 후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고 묻고 그렇지 않다-란 결론을 내리는 방식이 뻔하긴 해도 의미가 있단 생각을 한다.
어쩌면 당신의 미드나잇 스페이스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그 커다란 아쉬움과 슬픔이 덜어질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미드나잇 스페이스에서 안내자를 만나 후회의 책을 펼치고 거기 적힌 후회를 꼼꼼하게 읽으며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사실 당신의 현재 삶은 불완전하고 기대에서 많이 벗어나 있더라도 무척 소중하고 애틋한 이야기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조금 더 힘을 내서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 살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 내 미드나잇 스페이스는 푹 꺼진 소파, 잘 익은 석류 한 바구와 아이패드가 놓인 낮은 나무 책상이 있고 건조한 바람이 부는 곳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