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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사색가 May 20. 2024

돌아기와 둘이서 제주도 9일 살기

1화: 겁도 없이 아이와 단 둘이서 무작정 시작한 여행


육아휴직 기간에 뭐라도 해야겠어!

회사 복직 전에 아기랑 같이 제주도 한달살기라도 한 번 해볼까?

그렇게 단순한 호기심과 모험심에서 시작한 여행이었다.


나는 육아휴직을 하며 돌이 조금 지난 아기를 키우고 있었다.

아내는 복직해서 회사를 다니는 중이라 길게 휴가를 쓰기 어려운 상황.

여행을 가면 내가 대부분(또는 전부)의 시간을 아기와 단둘이서 보내야 했다.

타지에서 "혼자" 돌쟁이 아기를 돌봐야 한다는 것이 가장 겁이 났다


처음엔 과감하게 한달살기를 외쳤다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듯 하여 2주로 줄였다.

그리고 숙소를 찾기 어려워서 9일만 살아보는 것으로 확정!

(숙소가 참그럴듯한 핑계였을지도...;;)


아이와 함께 살만한 숙소 찾기

여행 준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영역은 역시나 숙소 찾기!!


우선 어떤 조건이 필요할지부터 정리해보았다.


1)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어야 함

2) 방이 2개이며 한 개는 온돌방이어야 함

3) 가격은 1박당 20만원 이하

4) 공항에서 차로 40분 이내이며 응급실까지 30분 이내

5) 조용한 마을에 위치

6) 청결하고 아이에게 안전한 숙소



조건을 최소화하려고 했으나 아이가 있다보니 쉽지는 않았다.

아이를 재우고 밤마다 2시간 이상씩 숙소를 찾고 비교했다. 그렇게 1주일 가량을 보낸 것 같았다.

꼭 조건이 한두가지씩 안 맞았다.


참고로 숙소 검색시 다음 2가지를 주로 활용했다.

1) 에어비앤비

  - 다양한 매물을 원하는 조건에 맞게 필터링해서 볼 수 있음

  - 수수료, 청소비 등이 포함되어 가격이 살짝 비싼 느낌

  - 사용자 리뷰가 상세히 작성되어 있는 편이라 잘 살펴보면 숙소 선택시 도움이 됨

2) 리브애니웨어

  - 한달살기를 위한 숙소를 중점적으로 연결해주는 어플.

  -  일반적으로 6박 이상을 조건으로 하는 숙소가 대부분이다.

  -  장기 숙박을 위한 숙소 위주이기에 다양한 매물을 볼 수 있음

  -  내가 원하는 조건에 맞게 필터링해주는 기능은 에어비앤비에 비해 부족하고

     전체적인 매물(?)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임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들어맞지는 않으나 90%이상 부합하는 숙소를 찾았다.

숙소랑 비행기 예약을 끝냈으니 본격적으로 뭘 할지 찾아봐야지~!



비행기 탑승하자마자 시작된 멘탈 붕괴


기대감으로 충만했던 초심과는 달리,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차 걱정이 많아졌다.


'비행기에서 아기가 계속 울면 어쩌지?'

'제주도에서 갑자기 아프면 나 혼자 병원으로 무사히 이동시킬 수 있을까?'

'혹시라도 계속 엄마를 찾으면 잘 달래고 안정시킬 수 있을까?'


불길한 예상은 역시나 잘 들어맞는 법인가.

비행기를 타자마자 아이는 돌아다니면서 놀겠다고 난리를 친다.

붙잡고 자리에 앉혀서 간식을 주고, 영상을 보여줘도 5분을 버티기가 힘들다.

승무원들이 돌아가며 놀아주고 화장실 앞에서 잠시 걷게 해 줘도 그 때 뿐이다.

돌아서면 다시 칭얼대고 찡찡대는 이 아이를 어쩌면 좋을까.


30여분 쯤 지났을까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했다.

아기가 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마이갓!!!

뭘 해도 울음이 쉽게 그치지 않다가 어느 순간 지친듯 겨우 잠이 둘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미 착륙까지 10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근 1시간에 걸쳐 나의 소중한 멘탈이 바사삭 날아가버린 후에 말이다.

그래도 아이가 잠든 그 10여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착륙해서 내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잠에서 깨지 않았다.

흠..내릴때는 잠에서 깨서 좀 걷기도 하고 그랬으면 좋으련만.

역시 아이는 나의 바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존재로구나..


어쩔 수 없이 잠든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짐을 들고 내렸다.

그렇게 수하물 벨트에서 유모차를 찾아서한 손으로 펴다 보니 어느새 식은 땀이 줄줄;;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승객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안쓰러웠는지 다가와서 도와줬다.


여차저차해서 공항을 나와서 렌트카도 빌리고, 마트에서 장도 봐서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휴..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9일동안 나의 집이 될 숙소.


숙소는 생각보다 괜찮았다.

거의 1주일동안 매일밤 수십개의 숙소를 검색해서 선택한 보람이 있었다.


청결과 인테리어에 세심하게 신경쓰고 있다는 느낌을 팍팍 느끼게 해 주었다.

거미줄이 있을만한 높은 천장 구석 나무기둥에도 거미줄 하나 없었다.

아이와 함께 머물기에 마음이 놓이는 곳이었다.

내가 숙박하는 동안 주인이 마당을 수시로 관리하고, 방역업체가 와서 정원 소독을 하고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 숙소 선택은 잘 한 것 같다는 자부심이 뽝~!!


숙소에 아이가 깨뜨리거나 부딪혀서 다칠만한 물건들을 전부 치웠다.

덕분에 숙소 인테리어가 빛을 발하지 못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숙소에서 나와 아이는 제주도 살기(?)를 시작했다.


여행 전반기: 숙소 주변을 천천히 산책하고 적응하는 시간


조용한 마을에 위치한 숙소를 선택한 것은 말 그대로 제주도에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관광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이 아니라 제주도 주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자연스레 물들어보고 싶었다.

아이에게도 조금 더 여유롭게 자연과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초반에는 대부분 시간을 머물고 있는 마을과 그 주변을 산책하는 데에 썼다.

아침먹고 동네 산책, 점심먹고 와서 좀 더 멀리 바닷가나 인근 마을 산책, 저녁에 다시 동네 산책..

정말 원없이 걸었다. 많이 걸을 때에는 하루에 10킬로미터 이상을 걸었다. 유모차를 끌면서 말이다.

가끔 아이가 힘들어하면 길가에 멈춰서 풀과 꽃을 구경하게 하고 다시 걸었다.


아이와 함께 걷다보면 마을을 지나가던 어르신과 자연스럽게 담소도 나누게 된다.

아이가 예쁘다는 이야기부터 왜 여행을 관광지가 아니라 이런 촌으로 왔냐, 요즘 농사가 잘 안 된다 등.

이렇듯 다양한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여행이 아니라 정말로 제주도에서 '지내고'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한적한 시골마을을 걷다보면 내 온 몸에 '평화롭다'는 생각이 퍼진다.

조금 더 나아가서 이런 게 '일상에서의 행복'인가 싶어진다.

어릴 적에는 전혀 몰랐던 산책의 묘미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3~4일 정도 이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니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다.

걸어갈 수 있을 법한 인근 마을도 한 번씩은 다녀오고 나니 이렇게 조금씩 제주도에 스며들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행 후반기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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