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일이 아니다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거나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책상 위 놓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노트북 뒤편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은 다름 아닌 인형과 피규어들이다. 영화 캐릭터 상품들도 있고, 막연히 귀엽게 생겨서 데려온 것들도 있다. 이렇게 귀엽고 멋지고 예쁜 것들이 진열된 나의 책상을 보고 있노라면 양가감정이 든다. 첫째로 드는 감정은 흐뭇함이요, 그 이후 밀려오는 감정은 다람 아닌 죄책감이다.
개인적으로 깔끔하게 해 두고 지내는 것을 좋아하며,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고 있다. 내 방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사용하는 공간 역시도 신경 쓰는 편이다. 청소는 가능한 한 자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직장에서는 조금 귀찮아서 그렇지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내 방은 다르다. 자꾸만 무언가를 더 사고 싶은 내 물욕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에 영화 피규어를 들였으니 이번 달에는 참자고 마음먹어도 어느 순간 고양이 캐릭터 인형을 찾아보는 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잊을만하면 반복된다.
원예 잡지 기자인 레베카. 훌륭한 외모에 괜찮은 직업을 지닌 그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쇼핑 중독자라는 사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어렸을 때부터 입사를 꿈꾸던 패션지 ‘알렛’의 면접을 보러 가던 중 홀린 듯 들어간 매장에서 매혹적인 녹색 스카프를 발견한다. 이 스카프가 면접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합리화를 마친 레베카는 한도가 얼마 남지 않은 카드들을 모두 끌어다 쓰지만, 하필 마지막 카드가 한도 초과 상태이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던 레베카는 현금 캐시백을 받기 위해 핫도그 판매대로 달려가, 고모가 위독하시다는 거짓말까지 불사하며 새치기를 한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한 남자에게 20 달러를 꾸어 스카프 구매에 성공한다.
마침내 레베카는 녹색 스카프를 매고 ‘알렛’의 사무실에 도착하지만 이미 새 직원이 뽑혔다는 안내를 받고 실망한다. 좌절도 잠시, 데스크 직원은 레베카에게 같은 계열사의 잡지에 취직하면 그만큼 ‘알렛’에 입사하기도 쉬울 거라며 마침 구인 중인 경제지의 면접을 제안한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간 그는 편집장이자 면접관인 브랜든을 보고 놀라고 만다. 그가 바로 레베카에 20 달러를 꿔 준 남자였던 것. 결국 레베카는 두 잡지사의 면접을 모두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만다. 친구 수지는 속상해하는 레베카에게 ‘알렛’에 직접 이력서를 보내볼 것을 조언한다. 수지의 말에 용기를 얻은 레베카는 ‘알렛’에 자신의 이력서와 함께 캐시미어 코트와 신용카드에 관한 직접 쓴 칼럼을 보내는 한편, 자신에게 모욕을 준 브랜든에게는 옷이나 사서 입으라는 비아냥 섞인 편지와 함께 20 달러를 동봉해 보낸다.
하지만 얼마 뒤 브랜든에게서 칼럼이 마음에 드니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그제야 레베카는 두 우편물이 뒤바뀌어 보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레베카는 알렛에 잘못 보내진 편지를 황급히 회수한 후, 훗날 ‘알렛’에 입사할 미래를 꿈 꾸며 아쉬운 대로 브랜든의 잡지사에 출근한다. 경제의 ‘ㄱ’도 모르는 그이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층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칼럼을 써 큰 호응을 얻기 시작하고, 이후 방송 출연 스케줄이 잡히는 것은 물론, 브랜든과의 사이에서도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에 온갖 핑계와 거짓말로 피해온 채무 집행관 데렉이 서서히 숨통을 조여 온다.
인간의 물욕이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만약 우리가 문명을 이루고 살지 않았더라면 그저 배 부르고, 따뜻한 잠자리에서 쉴 수 있는 수준에서 만족했으리라.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기에 우리는 너무나 먼 길을 오고 말았다. 길거리를 나서도, 핸드폰이나 텔레비전만 켜도 온갖 광고들이 우리의 눈을 현혹한다. 그저 걸어 놓은 광고를 우리가 우연히 보는 정도로는 모자랐는지 우리가 채팅 앱에 언급하는 것들, 심지어는 입으로 말하는 것들까지 알고리즘에 의해 분석되어 우리 앞에 맞춤 광고를 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단순히 물욕을 느끼고 이것이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 개인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물욕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무엇을 욕망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원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다. 나의 경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귀여운 인형이나 영화 캐릭터의 피규어에 마음이 약해진다. 이런 것들을 사 모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 따위 묻지 않은지 오래이다. 내 모든 소비에 이 질문을 적용했다면 나의 기분 전환을 위해 한두 개쯤만 남기고 모두 구매하지 않았어야 맞다. 이런 나와 달리 다른 누군가는 시계나 가방, 옷 등 자신을 꾸미는 데 투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여행에 월급을 헌납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때때로 속수무책으로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일까. 물론 일차적인 이유는 자본주의와 알고리즘에 의해 놀아난 탓이지만 이를 제쳐 두고 생각해 보자. 정확히는 우리가 언제 유독 소비를 하고 싶어 지는지 고민해 보자. 아직 퇴근까지 세 시간 이상 남은 시점, 스트레스는 잔뜩 쌓인 상태에서 아주 잠깐 숨 돌리며 어김없이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을 뒤적거린다. 항상 비슷한 것을 검색하고 봤던 탓에 인터넷 창 구석에는 내가 흥미를 가질만한 무언가의 광고가 뜬다. 그러면 나는 홀린 듯 그 제품의 블로그와 유튜브 후기를 검색해 보고, 마침내는 쇼핑몰에 들어가 그 제품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비단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뿐일까. 가까운 사람과 다퉜을 때, 도전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혹은 외로울 때 등, 무언가 부정적인 감정이 부풀기 시작할 때면 사람 마음은 약해지기 마련이고 이를 해소하고 싶어 진다. 그리고 이때 쉽게 눈을 돌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다름 아닌 쇼핑이다. 그 종류가 무엇이든 원하는 물건을 고르고 결제를 하는 순간까지는 기분이 확실히 좋아지기 때문이다. 비용은 들지언정 효과는 즉각적이다. 문제는 이때의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택배 상자가 도착한 순간, 혹은 쇼핑백을 들고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이 충족감은 서서히 줄어든다. 영화 ‘쇼퍼 홀릭’의 레베카 역시 쇼핑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는지 이런 명대사를 남긴다.
‘쇼핑을 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져요. 환한 불이 켜지죠. 하지만 곧 꺼져요. 그래서 또 쇼핑해요.’
나는 분명 기분이 좋아지려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골라 틀었건만. 이와 같은 레베카의 대사에 왠지 팩트 폭행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레베카와 상대 브랜든 사이의 로맨스가 있었음에도 ‘쇼퍼 홀릭’을 단순히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만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덕분에 나도 몰래 내 책상에 자리한 인형과 피규어들을 둘러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론 팍팍한 일상,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서 한 번씩 쇼핑을 하는 건 정신 건강에 오히려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정도의 문제이리라. 당분간은 단순 기분 전환을 위한 쇼핑은 자제해 봐야겠다.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1093908/?ref_=ext_shr_l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