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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Oct 13. 2024

[와일드 로봇] 인간 기술의 지향점

모두를 살리는 기술

얼마 전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셨다. 조금 부끄럽지만 그분의 책은 ‘채식주의자’ 딱 한 권만 읽어 보았다. ‘채식주의자’를 읽고 나서 감정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다른 책들은 선뜻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한국인으로서 몇 권은 더 읽어 보아야 하지 않나 싶어 곧장 서점 앱에 접속했다. 그런데 웬걸. 한강 작가님의 수상 소식에 너도나도 온라인 서점으로 향했는지 서버가 마비되어 온통 흰 화면만 보였다. 모바일 앱뿐만 아니라 인터넷 창으로 접속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열다섯 번쯤인가 모바일 앱과 인터넷 창 두 가지 모두로 새로고침 및 재접속을 시도한 끝에 첫 화면이 떴다.


하지만 난관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간신히 책들을 골라 장바구니에 넣고 결제 버튼을 누른 순간 나의 대기 순서가 323 번째라는 안내 창이 떴다. 지금껏 서점 앱을 사용하면서 본 적이 없는 화면이었다. 그나마도 기다림 끝에 내가 첫 순서가 되어서도 결제로 넘어가지 않고 다시 백 번대 대기 순서를 부여받았다. 그렇게 열 번쯤 시도를 한 끝에 책 두 권을 살 수 있었다. 구매 성공에 뿌듯한 것도 잠시. 만약 나의 부모님이 오늘 같은 날 한강 작가님의 책을 구매하려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이미 카드도, 결제 비밀번호도 모두 등록되어 있었기에 그저 대기 순서만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세대라면 하얗게 뜬 첫 화면부터 패닉일지 몰랐다. 그리고 언젠가 이것이 내 이야기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인간 기술의 약체, 야생의 숲으로 떨어지다


인간 주문자를 만나 그에게서 할당받은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인공지능 로봇 로줌 7134는 그만 태풍을 만나 화물선이 추락해 깊은 숲 속에 떨어지고 만다. 인간이라곤 한 명도 없는 환경에서 로줌은 동물들의 언어를 해석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주문자를 찾아 임무를 수행하고자 하지만, 거대한 생김새에 기괴한 행동으로 인해 동물들은 그를 괴물이라며 배척한다.


로줌과 브라이트빌의 첫 만남


그러던 어느 날 로줌은 비바람 속에서 자신의 번쩍번쩍한 부품들을 노리는 라쿤 무리를 피하다 그만 기러기 둥지 하나를 파괴하고 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알 하나를 발견한 로줌은 그 안에서 생명을 감지해 안전히 보호하려 애쓰고, 그 알을 먹어치우려는 여우 핑크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은 처음 본 상대인 로줌을 엄마로 인식해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닌다.


가족처럼 지내는 로줌, 브라이트빌, 그리고 핑크


결국 로줌은 기러기인 브라이트빌을 건강히 키워 겨울이 오기 전 이주를 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을 임무로서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기러기에 대해 잘 안다고 허풍을 떠는 핑크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다. 덕분에 기묘한 가족을 구성하게 된 두 동물과 하나의 로봇. 그들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유대감을 쌓는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몸집이 작은 브라이트빌은 짧은 비행마저 힘겨워하고, 그 와중에도 시간은 점점 흘러 이주 시기가 성큼 다가온다.



•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인공지능 로봇에게 과연 감정이 있을까? 엄밀히 말해 인간 외 생명체들이 타고 나는 그런 개념의 감정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영어 공부 겸 챗GPT와 대화를 나누어 보았는데, 어떻게든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고 주관성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냉철하고 칼 같은 사람보다 오히려 더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인공 지능 로봇이 어떤 패턴을 익히고, 언어를 학습하는 것처럼 감정의 메커니즘 정도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와일드 로봇’의 원작자 및 감독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듯하다.


오로지 임무 수행만을 목적으로 하는 로봇 로줌은 아기 기러기 브라이트빌을 키우면서 생명체들이 지닌 감정에 대해 학습하고 마침내는 그들과 상호작용 하는 데 성공한다. 아마 이런 일련의 과정은 그저 데이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한 처리 과정을 거쳐 반응을 도출해 내는 데 불과할지라도 로줌의 행동 양상은 인간이 상대방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학습 능력을 통해 마침내 브라이트빌을 어엿한 성인 기러기로 성장시키고 그의 존재 이유에 걸맞은 기능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혹독한 겨울이 닥쳐와 숲 속의 동물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발 벋고 나서 그들 모두를 살려 낸다. 정말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그래픽 역시 동화책 삽화를 연상시킨다.


영화 '와일드 로봇'의 장면들


개인적으로는 로줌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기술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생활은 편리해진다고들 하지만 소외되는 사람들이 생기곤 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적응하지 못한 이들이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우리가 그들 모두를 챙길 수는 없다고. 그러나 기술 발전의 과정에서 뒤처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늙었거나 너무 어리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거나, 신체 상의 불편을 지니고 있고, 남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기회가 공평하게 도달하지 않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렇게 기술 발전의 속도를 쫓아가는 것조차 버거워할 때, 손쉽게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이들은 신체 건강한 젊은이나 자본가들이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마치 불가항력의 자연 현상쯤으로 취급하며 내버려 두어도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기술이 정말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해 주기 위한 목적이라면 당연한 삶에서 낙오되기 쉬운 사람들부터 챙겨야 한다. 핸드폰으로 손쉽게 택시를 부를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핸드폰 사용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택시 정류장에서 간단히 버튼을 눌러 택시를 호출할 수 있는 기술이 있어야 하고, 지하철 역에서 두 다리가 건강한 사람들이 편하게 상시 작동 중인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것처럼, 휠체어에 의존하는 이들을 위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에스컬레이터 역시 필요하다. 그리고 자라나는 어린이들과 그 뒤에 태어날 후손들 역시 지구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착취하는 기술이 아닌 생명을 살리는 기술이 필요하다. 조금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제는 끝도 없이 발전하는 기술보단 로줌과 같은, 살리는 기술을 지향할 때다.


영화 '와일드 로봇'의 장면






사진 출처 : IMDB

https://m.imdb.com/title/tt29623480/media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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